BATTERY MOTOR SPORTS, 푸조 e-208 VS 르노 조에

  • 기사입력 2021.03.16 09:44
  • 최종수정 2021.06.28 16:29
  • 기자명 모터매거진

내연기관 종말을 외치는 시대에, 전기모터는 과연 모터스포츠의 짜릿함을 품고 있을까? 이번에 모인 두 녀석의 출력만 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것은 무릇 달려봐야 아는 법. 모터스포츠의 혼은 전기모터를 굴리는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ELECTRIC POWER FROM LE MANS 24, PEUGEOT e-208

WRC, 다카르 랠리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무대를 누벼 온 푸조이지만, 그중에서도 꽤 진심이었던 모터스포츠라 한다면 ‘르망 24시’를 꼽을 수 있다. 평소에는 프랑스 내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일반 도로로 사용되는 라 사르트 서킷은 르망 24시가 열리는 시점에서 자동차들이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격전의 무대가 된다. 지금은 세계 내구레이스 선수권(WEC) 무대들 중 하나가 되었지만, 르망 24시가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푸조는 이곳에서 수많은 기술들을 다듬어 왔다. 디젤 엔진의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DPF를 레이스용 자동차에 장착해 시험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동안 이 무대를 떠나 다른 곳을 기웃거리던 푸조는 어느새 복귀를 선언했고,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하이브리드 하이퍼카’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려 한다. 내연기관을 본격적으로 버리지는 못했지만, 전기 모터가 이제 보조의 영역을 넘어 주동력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한 모터스포츠의 영혼을 받은 e-208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사자의 송곳니’를 닮은 LED 주간주행등이다. 신형 508부터 그 존재를 드러냈던 것인데 차체가 작은 208에서 세로로 긴 송곳니가 드러나니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낮에도 꽤 멋이 있지만, 어스름 즈음에 헤드램프가 완전히 점등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송곳니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릴은 검은색을 기반으로 차체 색상이 혼합된 수많은 큐브가 배열되어 있어 멋이 배가된다.

차체 길이가 4m가 겨우 넘기 때문에 굉장히 짧은 셈이지만, 보닛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고 지붕이 꽤 낮은 편이기 때문에 땅딸막하다는 느낌은 없다. 휠하우스는 검은색을 둘러 약간 멋을 부렸고 그 안에 17인치 휠이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후면도 매력적으로 다듬었는데, 사자의 발을 그대로 옮겨온 테일램프가 낮에도 밤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니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사자 엠블럼 일부에 옅은 녹색을 칠해 전기차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은 차체임에도 불구하고 넉넉하게 마련된 공간이다. 아마도 차체와 실내 크기 때문에 1열에 성인 두 명이 탑승하면 2열을 쓸 수 없다고 보겠지만, 사실은 조수석을 앞으로 당기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2열에 성인 탑승이 가능하다. 조수석 글로브박스 쪽을 교묘하게 파 놓았기에 의자를 당겨도 무릎을 놓을 공간이 넉넉하게 확보된다. 가죽과 직물을 혼합한 시트는 측면 지지대를 키워 편안함과 역동성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이제 이 작은 해치백 안에 있는 질주 본능을 깨워볼 시간이다. 스펙만 보면 최고출력이 136마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뒤 웃어넘기는 운전자들도 있겠지만, 일단 오른발에 힘을 주는 순간 만만치 않은 가속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발진 그리고 가속만 놓고 보면 ‘숫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빠르다. 물론 차를 부드럽게 운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그 성격은 많이 억제되어 있지만,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그대로 본성이 드러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를 기록하는 것은 순식간에 끝난다. 체감상 시속 130km를 넘어가려 하면 그때부터는 속력이 잘 붙지 않는데, 실용적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전기차들이 그즈음에서 속도 한계에 달하니 흠잡을 일은 아니다. 그거보다는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낮게 깔리는 감각과 꽤 낮은 위치에 있는 운전석 그리고 안정감이 크게 다가온다. 평범한 해치백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이 있으니 자신 있게 차체를 다룰 수 있다.이 정도로 감탄하기는 이르다. e-208의 진짜 재미는 코너링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긴 직선을 최고 속도로 달려 나가는 것도 좋지만, 역시 모터스포츠는 코너를 정복하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은가. 푸조 특유의 쫀득한 느낌을 발휘하는 서스펜션은 전기차 시대가 되어도 여전히 대단한 운전의 재미를 제공한다. 그저 단단한 것도 아니고 너무 무르지도 않지만, 절묘한 반응으로 코너에서 자동차와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그렇게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배터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행 거리가 의외로 길다고 느껴지는데, 도심에서 흐름에 맞춰 이동한다면 인증받은 주행거리 이상을 여유 있게 달릴 수 있다. 되도록 보급 횟수를 줄여야 하는 모터스포츠에서는 연비(아니, 전기차이니까 이제 전비인가)도 중요한 만큼, 이 부문에서 푸조의 모터스포츠 DNA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작은 해치백 안에 담긴 짜릿한 모터스포츠의 DNA, 잘 즐겼다.

ELECTRIC POWER FROM FORMULA 1, RENAULT ZOE르노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모터스포츠의 최고봉, F1에 진심을 다한다. 어려운 경영 사정으로 인해 철수한 적도 있지만, 복귀는 반드시 F1 무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경영 쇄신을 가하는 와중에도 F1만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긴 코로나 19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는 현재도 꾸준히 참전하고 있으니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할 것 같다.F1을 잘 모른다면, 이곳에서 다듬은 기술이 양산차에 적용될 수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히 단언할 수 있다. F1에 지속해서 참가하고 있기에, 전기모터를 추가하면서도 운전의 재미가 있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고. 전기 모터가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에 고성능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F1 레이스카는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여기서 다듬은 기술은 다른 모터스포츠 무대로 옮겨져 포뮬러 E 등을 발전시키고 있다.그러한 F1의 영혼을 받은 조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F1 레이스카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 매끈한 표면을 가진 차체와 꼭 필요한 부분만 요소마다 배치한 심플함, 그리고 프랑스 특유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디자인.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길이가 짧고 해치백 형태를 갖고 있지만, F1 레이스카를 앞뒤로 잘 압축한 뒤에 실용성을 더해 다듬으면 이런 모습이 나올 것이다. 곡선을 부여한 가늘고 우아한 형태의 헤드램프는 전면 날개를 연상시킨다.

조에의 해치백 형태는 실용성과 함께 디자인적으로도 아름다웠던 해치백 르노 5와 과거 ‘주전자’라고 불렸던 F1 레이스카를 연상시킨다. 2열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도어 손잡이는 5도어 모델이라는 점을 잊게 만든다. 헤드램프부터 벨트 라인으로 이어지는 라인, 그리고 1열 도어 손잡이에서 테일램프로 이어지는 라인은 F1 레이스카 측면의 돌출 부위를 연상케 한다. 다이아몬드 형태로 빛나는 테일램프는 LED를 집어넣어 시인성이 높고, 밤에도 아름답게 빛난다.실내에서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은 꽤 높은 시트 포지션이다. 분명히 해치백 모델을 타고 있는데도 마치 SUV 모델을 운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 포지션과 시야가 도심에서 편안함을 만든다. 대시보드를 평평하게 다듬어 앞 유리창 너머로 시야를 확보하기가 용이하고,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꽤 선명하게 정보를 전달한다. 이지커넥트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용한 9.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도 여전히 매력적이다.이제 이 작은 해치백 안에 있는 F1 본능을 깨워볼 시간이다. 숫자만 보면 최고출력이 136마력에 불과하니 F1의 재미 절반도 못 느끼겠다고 판단하겠지만, 일단 오른발에 힘을 주는 순간 박력 있는 가속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밟기만 해도 차체를 지체 없이 끌고 나가며, 조금 더 밟으면 다른 차들을 소리 없이 추월해버린다. F1 레이서 ‘페르난도 알론소’의 절반 정도는 따라간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생각보다 발놀림이 제법이다. 배터리로 인해 시트 포지션이 꽤 높다 보니 이 부분을 걱정했었는데, 역시 모터스포츠를 통해 다듬어 온 무게 배분 기술은 숨길 수 없나 보다. 평상시의 주행 감각도 안정적이지만 산길을 좌우로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도로에서도 차체가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연비를 위해 그립이 약한 타이어를 끼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 개의 타이어가 지면과 잘 붙어서 안정감을 준다.역시 대중성을 지향하면서도 F1의 영혼을 담은 자동차라는 것이 실감 난다. 코너링에서 느껴지는 단단함 그 이상의 쫀득한 느낌은 조에를 단순한 이동용 자동차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 멋있는 자동차로 만들어준다. 국내 시장에는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해치백 클리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모터스포츠의 혼을 품은 전기 모터를 믿고 조에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배터리 덕분인지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주행거리라면 평소에 부지런히 충전해 두었을 경우 급하게 시골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을 빠르게 달려도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역시 F1의 DNA를 담은 실용적이면서 재미있는 해치백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지금쯤 르노에서 진지하게 조에의 고성능 버전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SPECIFICATION _ RENAULT ZOE길이×너비×높이  4090×1730×1560mm  |  휠베이스 2590mm엔진형식  전기모터  |  배기량 -  |  최고출력  136ps최대토크  25.0kg·m  |  변속기  1단  |  구동방식  FWD복합전비  4.8km/kWh  |  가격  4395만원(보조금 수령 전)SPECIFICATION _ PEUGEOT e-208길이×너비×높이  4055×1745×1435mm  |  휠베이스 2540mm엔진형식  전기모터  |  배기량 -  |  최고출력  136ps최대토크  26.5kg·m  |  변속기  1단  |  구동방식  FWD복합전비  4.4km/kWh  |  가격  4590만원(보조금 수령 전)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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