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GT, 페라리 로마

  • 기사입력 2021.03.10 18:53
  • 최종수정 2021.06.28 16:27
  • 기자명 모터매거진

페라리가 말한다. 진짜 GT카가 무엇인지.


뭔가 다르다. 지금까지 보던 페라리와 다르다. 자극적이기보단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다. 눈앞에 신상 페라리 로마가 도착했다. 보통 페라리 하면 레드 혹은 옐로우 컬러가 익숙한데 로마에는 은빛 페인트를 발랐다. 덕분에 유려한 곡선이 세련되게 보인다. 로마는 출시 당시 이탈리아의 황금기였던 1950~1960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라 밝혔다. 그래서 모델명도 그 영광의 중심이었던 수도 ‘로마’로 정한 것이다. 자동차 장르 중에서 가장 여유를 강조하는 게 GT다. 로마는 페라리가 잘 만지는 롱노즈 숏데크 타입에 아름다운 GT카다.

곱상한 외모지만 달리기 실력은 폭발적이다. 기다란 보닛 아래 담겨 있는 파워유닛은 V8 3.8ℓ 트윈 터보다. 최고출력 620마력, 최대토크 77.5kg∙m의 힘을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초, 시속 200km까지는 9.4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촬영 당시 노면 온도가 낮아 화끈하게 밟아 보진 않았지만, 로마가 품고 있는 힘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밟는 대로 나가고 고속에서 지치는 기색이 없다. 대한민국 도로에서 이보다 빠른 녀석을 만날 확률은 0에 가깝다. 터보 엔진임에도 리스폰스가 상당히 빠르다. 드라이빙 모드가 웻(WET)이어도 파워나 반응속도가 만족스럽다.뻥 뚫린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도 힘은 남아돈다. 브로셔에 적혀 있는 최고시속 320km는 무난하게 찍을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고속 안정감이다. 거추장스러운 에어로파츠가 달리지 않았음에도 최고 수준의 고속 크루징 실력을 보여준다. 공기를 잘 다스리게끔 빚어 놓은 차체 덕분에 고속 트랙션이 환상적이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노면에 밀착해 운전자가 더 용기를 낼 수 있다. 저속에서 럭셔리 쿠페 정도의 승차감이었는데 고속에서는 하체의 부싱들이 단박에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전진만 잘하는 게 아니라 잘 돌기까지 한다. 엔진이 캐빈룸 쪽으로 당겨져 있어 스티어링 피드백이 빠르면서 솔직하다. 로마는 그리 작은 차가 아닌데 코너를 탈 때마다 작은 차를 몰고 있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 와인딩 마니아들이 작은 차를 선호하는 이유가 이 느낌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차가 움직일 때의 희열이 있다. 여하튼 로마의 코너링 성향은 뉴트럴스티어다. 살짝 언더스티어가 보이지만 이 정도의 농도는 의도적인 배려이기에 뉴트럴스티어로 보는 게 맞다. 복합코너도 민첩하게 돌파한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부드럽고 과격한 조향에도 자세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페라리가 로마를 제작할 때 하체를 얼마나 잘 조율했는지는 타이어 세팅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더 말하자면 로마는 무려 600마력이 넘는 초고성능 GT카다. 그것도 사륜구동도 아닌 후륜구동이다. 페라리가 고객의 안전을 생각했다면 뒷타이어 폭이 적어도 305mm는 넘어야 한다. 아무리 최근 타이어 그립 수준이 올라갔다 하더라도 이 괴력에 285mm는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타이어 스펙만 보면 뒤를 털고 날리면서 타는 차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프런트 타이어는 245mm다. 페라리에서 가장 작은 엔진이라지만 로마의 심장은 8기통이다. 이 대형 유닛이 담긴 프런트를 245mm로 조향을 주고 제동을 책임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직접 몰아 보니 페라리 엔지니어링은 나 따위가 걱정하면 안 되는 영역이었다. 로마는 독일산 비즈니스 세단 수준의 타이어를 끼고 말도 안 되는 트랙션을 보여준다.

이렇게 강한 접지에는 숨어 있는 리어 스포일러의 공도 크다. 리어 글라스 끝에 있는데 3가지 모드(LD : Low Drag, MD : Medium Drag, HD : High Drag)에 따라 각도를 달리 한다. 운전자가 수동으로 조작할 수 없고 로마가 상황에 맞춰 알아서 리어 스포일러를 활성화한다. 시속 100km까지는 LD 모드로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그 이상 속도에서는 MD 모드로 놓인다. 이때 다운포스는 시속 250km에서 67kg 정도다. 각도가 가장 가파른 HD 모드는 가장 큰 다운포스를 일으키기에 리어 트랙션을 확보해야 하는 순간, 예를 들면 급격한 핸들링 혹은 파워풀한 브레이킹이 들어갈 때 설정된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다루기 충분하다. 브레이크스티어 혹은 노즈다이브와 같은 현상을 잘 잡았다.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페이드 혹은 베이퍼록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냉간 시에도 제동이 크게 밀리지 않고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일리카로 사용하는 데 무리 없다.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으로 말리지 않는 기본도 잊지 않았다. 잠깐 타보고 로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웃기지만 평범한 운전자도 쉽게 달릴 수 있게 잘 만들었다.  

신나게 달렸으니 로마의 외관을 둘러보자. 클래식하면서도 콘셉트카 같기도 하고 오묘한 분위기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과거 페라리가 느껴지지만, 디테일은 최신형으로 꾸몄다. 먼저 세로로 길던 주간주행등을 가로로 배치했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차체 색상으로 마무리하고 중앙에 배지를 붙여 마무리해 여느 페라리와 다른 인상이다. 개인적으로 옆에서 바라볼 때 로마가 가장 예뻤다. 우아한데 기품이 흐른다. 뒤쪽은 트렁크 리드 라인을 테일램프와 일체감 있게 만들었다. 아마도 디자이너가 엉덩이를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고 싶어 이렇게 의도했을 거라 추측한다. 아래 원형 머플러 커터 4발은 이 차가 마냥 순하지만 않다는 메시지다.

이제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페라리를 탈 때마다 느끼지만 슈퍼카 중에서 승하차가 가장 수월하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차를 오랫동안 소유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센터페시아는 운전자를 감싸는 레이아웃이다. 거기에 대칭형이라 안정감이 들고 여느 페라리와 달라 신선하다. 스티어링 휠은 많은 부분이 디지털 타입으로 바뀌었지만, 직관성이 좋아 다루기 쉽다. 최고급 가죽이 씌워진 시트는 편하면서도 코너에서 운전자를 놓치지 않는다. 그 밖에 실내에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조수석 앞에 달려 있는 디스플레이다. 다른 모델 보다 크기가 커졌다. 운전자가 얼마나 달리고 있는지 알려주기에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위험한 날씨에 차도 무사히 잘 탔고 이곳저곳 구경도 잘했다. 로마가 출시했을 때 단순히 뚜껑 열리지 않는 포르토피노라 생각했다. 때문에 별 기대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허나 페라리는 페라리다. 포르토피노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만약 포르토피노와 차이가 없으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뚜껑 열리는 포르토피노를 선택할 것이다. 페라리는 이것을 잘 예상했고 작품 하나를 내놓았다. 진짜 GT카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렸다. 오픈에어링을 포기한 대신 매혹적인 루프라인을 그리고 보디 강성은 최고점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댐퍼 스트로크를 살짝 늘리고 스프링 레이트도 조금 약하게 튜닝했다. 그 결과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확보하고 불규칙한 노면에 대응도 깔끔하다. 어느 누가 차 한 대만 줄 테니 평생 그것만 타라는 미션이 떨어지면 무조건 트렁크가 있는 페라리, 로마를 택할 것이다. 눈으로 느껴진다. 10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디자인이라는 게….   

SPECIFICATION FERRARI ROMA길이×너비×높이  4715×1975×1300mm  |  휠베이스  2670mm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3855cc  |  최고출력  ​​620ps최대토크  77.5kg·m  |  변속기  8단 DCT  |  구동방식  ​​RWD복합연비  7.4km/ℓ  |  가격  3억2000만원~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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