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NDERSTRUCK, 포르쉐 타이칸 4S

  • 기사입력 2021.01.20 10:45
  • 최종수정 2021.06.28 14:09
  • 기자명 모터매거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제 포르쉐의 미래는 전기차에 있다!

오래 전, 볼프강 포르쉐 박사(포르쉐를 창립한 ‘페르디난드 포르쉐’의 손자)가 “포르쉐의 미래는 전기차에 있다”고 말했을 때, 굉장히 놀랐다. 당시 그는 918 스파이더를 앞으로 내세우면서 “이 차는 포르쉐가 앞으로 배출가스가 적은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는 신호탄이다”라고 말했었는데, 당시 포르쉐의 사장이었던 ‘마티아스 뮐러’도 옆에서 이를 거들며 “카이엔과 파나메라의 PHEV를 기점으로 전동화 자동차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었다.

그 때는 몰랐다. 엉덩이가 아니라 등짝에서 불을 내뿜는 918의 사운드는 꽤 매력적이었지만, 내연기관 자체가 없는 전기차가 매력적인 소리를 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르쉐는 무언가 달랐다. 콘셉트카 미션 E로 기대치를 조금씩 높이더니, 어느새 제법 잘 완성된 형태로 양산차인 ‘타이칸’을 내놓았다. 전기 스포츠카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그 동안 부족했던 감성을 포르쉐가 제대로 만들었다고.

미션 E? 타이칸!

콘셉트카와 양산차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것 같다. 타이칸은 미션 E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가졌다. 4개의 LED 주간주행등을 품은 사각형의 헤드램프, 길고 넓으면서 낮은 차체, 후면에서 길게 빛나는 테일램프 등 대부분의 요소들을 현실에 그대로 가져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카메라 대신 제대로 된 사이드미러를 달았다는 것, 그리고 제대로 된 도어 손잡이가 달렸다는 정도다. 아, B필러가 제대로 추가되었다는 것도 뺄 수 없다.

포르쉐 내에서 4도어 쿠페라고 하면 파나메라도 있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다. 곡선을 품으면서 최대한 낮게 깔리는 지붕 때문일 것이다. 헤드램프 하단에는 검은색의 눈물 라인이 있고 범퍼 하단과 사이드스커트 등 낮게 깔리는 부분들은 모두 검은색으로 감쌌다. 그래서인지 차체가 바닥에 깔려서 움직이는 것 같다. 휠하우스를 꽉 채우는 5스포크 휠은 역동성과 스포츠카의 정체성을 더 중시하겠다는 포르쉐의 자존심이다.

실내는 하이테크와 디지털의 결정체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가진 계기판은 박스터 때부터 익숙한 3개의 원 그래픽을 보여준다. 전기차라서 회전계는 없지만 말이다. 3개의 디스플레이가 센터페시아와 센터 터널, 그리고 조수석 앞부분을 장식하는데, 각각 다른 정보들을 표시할 수 있다. 사진만 봤을 때는 어떻게 변속하는지 궁금했는데, 계기판 오른쪽 하단에 변속 레버가 있다. 스포츠카지만 1열에 실용성 높은 컵홀더 두 개가 있다.

몸을 단단하게 감싸주는 시트는 역동적인 주행에서 신체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한다. 그러면서도 장거리 주행에서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고 의외로 편안하다. 2열에도 세미버킷 시트를 적용한 것이 포르쉐답다. 아쉬운 것은 2열의 헤드룸에 여유가 없다는 것. 그나마 국내 수입 모델은 글라스 루프를 기본 적용해 헤드룸을 확보했다고 한다. 자외선을 거의 다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틴팅을 추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백두대간 이화령 고개를 넘다

포르쉐의 전통에 따라 왼쪽에 있는 시동 버튼을 눌렀다. 밖에서는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으니 조용한 전기차를 타고 있다는 것이 단번에 느껴진다. 아무리 전기차가 널리 보급되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다른 세계의 이동수단처럼 느껴지는데, 평소에 애용하지 못하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그게 스포츠카라면 더 그렇다. ‘스포츠카의 성능을 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오른발에 힘을 줬는데, 웬걸! 너무 놀라버렸다. 순식간에 가속하면서 머리와 등을 시트에 그대로 묻어버리는 것도 그렇지만, 가속하면서 나는 신기한 음색 때문에 더 그랬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에서 들릴 법한 소리인데, 실제로 들어보면 결코 천박하지 않다. 게다가 가속 페달을 밟는 만큼 소리도 덩달아 높아지는데, 그래서 더더욱 스포츠카를 운전한다는 기분이 난다.

가속 성능에 놀라다 보니 어느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전기차의 특성에 대한 것이다. 보통 전기차라는 것이 무거운 배터리를 차체 하단에 깔고 있는데, 그래서 고속 주행에서도 웬만하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 된다고 여기기 쉽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서스펜션 세팅, 그리고 무게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생각보다는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이칸은 어떻냐고 묻는다면, 정말 안정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가속을 거듭하고 고속 영역을 지나 어느새 초고속 영역에 진입했지만, 타이칸은 노면을 강력하게 움켜쥐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아무리 차체가 무겁다고 해도 초고속에 접어들면 슬쩍 떠버리기 마련이고 전기차 역시 예외는 아닌데, 타이칸은 그런 물리 법칙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차체 하단으로 어떻게 공기가 흐르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 안정적인 면을 고속도로에서 느끼기 힘들다면, 구불구불한 산길로 향하면 된다. 주행을 넘어 워프에 가까운 이동을 한 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이화령 고개에 접어들었다. 차체가 앞뒤로, 그리고 좌우로 계속 흔들릴 것이기 때문에 자세가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은 그냥 필자의 기우였다. 좌측으로, 그리고 우측으로 반복해서 스티어링을 돌리고 코너에서 아무리 흔들어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또 다시 타이칸 특유의 사운드가 활약한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변속기가 없기 때문에 기어 단수를 코너에 맞추고 엔진 회전을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타이칸은 후륜에 변속기를 품고 있긴 하지만, 고속 영역에서 한 번 더 변속할 뿐 이런 와인딩에서는 1단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변속이 없어 생기는 이상한 감각을 사운드가 상쇄하고 있다. ‘그래 변속은 차에게 맡기고 신나게 코너에 뛰어들어보자!’라고 결심하게 된다.

게다가 브레이크도 놀랍다. 제동력이 뛰어난 거야 포르쉐가 가진 기본기지만, 회생 제동 영역과 물리 브레이크 영역의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질감이 없다. 계기판의 그래프를 보면서 인식하지 않는 한, 발끝에 전해지는 감각으로 회생 제동과 물리 제동을 구분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계까지 몰아붙여 볼수록 정말 대단한 전기차가 나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느새 이화령 고개를 넘어 멀리 떨어진 목적지에 도착했다. 달리다 보니 배터리를 꽤 많이 사용했는데,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맞추고 오른발에서 힘을 빼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배터리 소모가 적다. 마침 800V를 지원하는 고속충전기가 있기에 사용해 봤는데, 4분이 약간 지난 시점에서 벌써 9kWh가 넘는 전기를 배터리에 공급했다. 이 정도면 일상적인 장거리 주행도 가능할 것 같다. 너무 신나게 운전했는지, 내리고 보니 왼쪽 발목이 약간 아프다.

이 먼 곳까지 와서 포르쉐의 대단함을 새삼스레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전기차 시대에도 포르쉐 특유의 스포츠카다운 느낌과 운전의 재미가 살아있을 줄이야! 지금까지 전기차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설령 있다 해도 스포츠카로서의 가치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 모든 것을 타이칸이 부수어 버렸다. 이 정도라면 이제 전기차를 이동 수단이 아니라 스포츠카라고 인정해도 된다. 가솔린 엔진을 찬양하는 이들도 타이칸을 운전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SPECIFICATIONPORSCHE TAYCAN 4S길이×너비×높이  4965×1965×1380mm휠베이스 2900mm  |  엔진형식  ​​전기모터배터리 용량  93.4kWh  |  최고출력  571ps최대토크  ​​66.3kg·m  |  변속기  2단 감속기어구동방식  AWD  |  복합전비  ​​2.9km/kWh가격  1억4560만원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포르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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