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보다 나은 둘의 모습, 볼보 XC90 T8 R-디자인

  • 기사입력 2021.01.19 10:06
  • 최종수정 2021.06.28 14:08
  • 기자명 모터매거진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PHEV 모델을 만나보고 꼭 실용성을 느껴보길 바란다. 북유럽 출신의 대형 SUV가 가진 운동 성능도 같이 느끼면 더 좋겠다.  

후손들을 위해 깨끗한 환경을 지키고 물려줘야 한다든지 하는 거창한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아직도 대배기량 엔진이 발휘하는 막강한 힘과 그르렁대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리드 모델에 대한 강한 저항감은 없다.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이라는 F1이 하이브리드로 변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많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이질감 없는 그러면서도 강한 출력을 가진 하이브리드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볼보의 대형 SUV XC90, 그중에서도 PHEV를 굳이 선택할 때도 그랬다. 평소에 환경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벤트 때도 재생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볼보이지만, 환경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기존의 8기통 파워트레인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린 것 같지만, 볼보는 본래 안전을 근본으로 두고 달리기 성능도 추구하는 회사다. 왜건으로 영국 투어링 카 챔피언십을 정복하고, 폴스타를 내세워 WTCC 무대를 장악했던 그런 곳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순수하게 출력과 경쾌함을 느끼고 싶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출가스가 감소하고 환경 보호가 실천된다면 좋은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 살아가는 한 어떤 형태로든 환경을 오염시켜버릴 수밖에 없기에 더 그렇다. 모처럼 장거리를 달릴 테니 전기모터만의 조용함은 덜 느껴지겠지만, 오랜만에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 같다. 조용히 시동을 걸고, 아니 전원을 켜고 아직은 조용한 주차장을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그전에 잠깐 디자인을 살펴보자. 볼보 디자인 변화의 시작을 알렸던 XC90는 현행 2세대 모델이 등장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 같은 감각은 없다. 당시에도 놀라웠지만,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매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헤드램프를 장식하는 ‘토르의 망치’ 주간주행등, 후면 끝부분을 장식하는 세로로 긴 형태의 테일램프는 지금도 여전히 볼보의 매력으로 남는다.

조금은 변한 부분도 있다. 시승차는 R-디자인을 적용한 모델이라 전용 메시 그릴과 블랙 하이글로시 데코를 갖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조금은 역동적으로 보인다. 사이드미러와 루프 레일도 검은색으로 감싸서 그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으며, 날개 형태로 다듬은 5스포크 휠은 무려 22인치에 달한다. 범퍼나 사이드스커트에서 조금 더 멋을 부렸다면 스포티 SUV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겠지만, 만약 그렇게까지 갔다면 그 차는 볼보가 아니었을 것이다.

도어를 열었을 때는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R-디자인 모델이라 흔히 볼보에서 볼 수 있었던 ‘바우어스 앤 윌킨스’ 대신 ‘하만카돈’ 오디오를 갖고 있다. 그런데 약간 생각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이쪽이 더 볼보에 어울리는 실내가 아닌가 싶다. 스피커 부분이 은색과 노란색으로 화려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검은색으로 주변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아쉽겠지만, 다른 음악들은 매력적으로 재생해 준다.

몸에 잘 맞고 편안하다는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시트는 가죽과 누벅을 혼합한 것이다. 질감이 스웨이드와 비슷해서 헛갈릴 수 있는데, 누벅이 훨씬 더 부드럽고 촘촘하면서도 질기다. 만약 차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상황이 생겨도 누벅으로 인해 신체가 고정되니 안전벨트의 위력이 배가된다. 2열은 편안하고, 3열은 성인이 다리를 놓기가 약간 불편하지만 단거리 정도는 충분히 앉아서 갈 수 있다. 평상시에는 3열을 접어두고 넓은 적재 공간을 즐기면 된다.

그럼 본격적으로 출발해보자. 전기모터만으로도 이 거대한 차체를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데, 이 때는 기본적으로 후륜구동이 된다. 뒤 차축에 모터가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스티어링 반응이 좀 더 좋아진다는 느낌도 든다. 태생부터 예리한 스티어링 반응을 보이는 차가 아니라서 그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별다른 소리도 없이 도심을 빠져나오다 보면, 배출가스 없이 도심의 공기를 지켰다는 뿌듯함도 든다.축적된 전기를 많이 사용하거나 오른발에 강하게 힘을 주면, 그때부터는 엔진이 깨어난다. 엔진 318마력, 모터 87마력을 더해 나오는 최종 출력은 405마력. 웬만한 스포츠카가 부럽지 않은 수치다. 과연 8기통 엔진을 대체할 수 있는 유닛이라고 말할 만하다. 그런데도 배기량은 2.0ℓ에 묶여 있다. 사실 이 배기량과 최고출력이 놀라울 것도 없는 게, 볼보는 폴스타를 통해 WTCC에 출전하면서 다운사이징 기술을 확실하게 다졌다.

연비 절약 주행 같은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굳이 자연스러운 주행이 필요하다면 계기판을 슬쩍 바라보며 오른발에 힘을 주면 된다. 평상시에는 오른쪽에 파워 미터가 나타나고 배터리 잔량에 따라 미터의 범위가 변하는데, ‘더 이상 밟으면 여기서부터는 엔진이 깨어난다’라고 인식하면 된다. 이를 의식해 가면서 오른발을 까딱거리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연비와 배출가스를 줄이는 ‘에코 주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달려야 할 때다. 그래서 주행 모드를 파워(Power)로 맞췄는데, 이때는 파워 미터 대신 엔진 회전계를 띄운다. 어차피 오른발을 바닥 끝까지 밟아도 초고속 영역에 도달하기 전에 쾌감이 끝나버리지만, 그런 건 상관없이 짜릿한 가속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조용한 엔진이지만 회전을 높이면 제법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조금 진동이 있는 것도 같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모터를 쓰는 일이 더 많을 테니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달리는 감각도 좋지만, 차체 크기보다 한 체급 작게 느껴지는 스티어링의 반응도 일품이다. 예리하지는 않지만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유격을 갖고 있는데, 차체와의 궁합이 참 좋다고 느껴진다. 와인딩에서도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만, 골목에서 마주오는 차를 만났을 때 진가가 나온다. 2m에 가까운 폭과 5m에 가까운 길이의 육중한 SUV를 힘겹게 조종한다는 느낌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길을 내줄 수 있다. 차체가 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진 것도 그런 느낌을 배가시킨다.PHEV 모델이라서 그런지 브레이크 면에서는 합격점을 주기가 애매하다. 브레이크 자체는 굉장히 신뢰할 수 있지만, 몇 번이나 밟아봐도 회생 제동에서 물리 제동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어색하다. 방법은 두 가지, 미리 전방의 상황을 파악한 뒤 회생 제동만으로 해결하거나 아니면 과감하게 회생 제동을 포기하고 깊게 밟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차를 완전히 길들일 때까지 깊게 밟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브레이크 성능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참 매력이 넘친다.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배출가스가 줄어들고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도심에서는 기름 한 방울 안 쓰고 주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출력도 있고 답답함도 없으니 만능으로 사용할 만하다. 설치된 충전기는 없지만 근처에 전원이 있으니 허락을 받고 휴대용 충전기를 꺼냈는데, 이 가방이 꽤 고급스럽다. 충전기는 빼버리고 가방만 챙겨서 어디론가 또 떠나고 싶어졌다.

SPECIFICATIONVOLVO XC90 T8 R-Design길이×너비×높이  4950×1960×1765mm휠베이스  2984mm  |  엔진형식  I4 터보+전기모터, 가솔린배기량 ​​​1969cc  |  최고출력  ​​318ps  |  최대토크  ​​40.8kg·m모터 최고출력  87ps  |  변속기  8단 자동    |  구동방식  AWD복합연비  -  |  가격  9290만원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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