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충전 괜찮아요?

  • 기사입력 2020.11.27 16:22
  • 최종수정 2021.06.28 13:28
  • 기자명 모터매거진

전기차 충전이 어제오늘 발생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야기하는 고속 충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터매거진 2020년 1월호를

본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한겨울에 전기차의 장거리 주행 능력을 검증하겠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접

왕복한 적이 있다. 당시 문제를 많이 지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회상해 보면 자동차 자체에는 사실 별 문제가 없었다. 재규어의 모델답게 안락함과 다이내믹이 동시에

있었고, 소음을 제법 잘 차단해서 크게 시끄럽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SUV의 형태라 실용성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제일 문제로 삼았던 것이 바로 충전이었다. 어쨌든 배터리를 충전해야만

이동할 수 있으니 틈틈이 휴게소마다 들르는 것이야 각오했지만, 충전 시간이 예상외로 길 줄은 몰랐다. 고속 충전이라고 말하기에 ‘40분 내 80%까지 충전’을 기대했지, 충전

허용 전류가 생각보다 낮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생각보다 느린 환경부의 충전기를 원망해 보지만 어쩌리오. 고비 때마다 충전이 발목을 잡았고 다음 날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자기 몇 달 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포르쉐가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국내에 런칭했기 때문이다. 고성능을 안정적으로 발휘하면서도 배출가스가

없다고 하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털털거리는

가솔린 엔진이 아니라면 환영할 수 없다’는 오랜 고집은 아니다. 어차피

포르쉐의 PHEV 모델들로 전기차의 장점은 꽤 많이 경험해 보았다. 문제는

역시 충전이다. 가솔린 모델과는 달리 전기차는 배터리가 떨어지는 순간 어찌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진정한 고속 충전기는 몇 개?

일단 타이칸에 대한 자료만 보면 충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아 보인다.

단 5분 충전으로 최대 100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22분 30초 이내에 배터리 잔량 5%에서 80%까지 도달할 수 있다.

‘꿈의 전기차가 나왔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에는

가혹한 조건이 있다. 바로 800V를 지원하는 급속 충전

네트워크를 사용했을 때 이야기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 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충전 네트워크는 800V를 지원하지 않는다.

다른 전기차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아우디가 현재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e-트론 역시 30분 정도면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최대 150kW의 출력을 지원할 때 이야기다. 필자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경험했던 충전 출력 중 가장 강한 출력이 약 78kW인데, 이를

충전 속도에 대입하면 적어도 1시간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150kW는 고사하고 100kW를 지원하는 고속충전기도 적은 것이

현실이다.

다시 타이칸으로 돌아가 보면, 800V와 초고속 충전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써는 ‘하이차저’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가 대영채비와 같이 만든 것인데, 800V 모델에서는 최대 350kW의 고속 충전이 가능하다. 첫 번째 문제는 이 시설이 현재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만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타이칸을 연결한다고 해도 정말 고속충전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후일 실제로 충전을

진행해보고 검증할 예정이다.

앞으로 이런 충전시설이 확대되면 전기차 보급에도 좋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내년까지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등 20곳을

선정해 하이차저를 구축하기로 했지만, 충전 부지를 제외하고 충전 설비 및 공사 예산만 최소 2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아무리 이익을 크게 내는 자동차 제조사라고

해도 이 정도의 예산을 가볍게 감당할 수는 없다. 전기차를 가솔린 자동차만큼 편하게 이용하는 미래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인 것이다.

집에서 충전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저녁에 퇴근해서 충전기를 물리고 다음날 아침 완충된 전기차로 출근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면 출퇴근이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장거리 주행은 아직까지 모험에 가깝다. 장거리 주행을 주로 담당하는 화물 운송용 트럭은 전기차가 아니라 수소를 사용하는 연료전지차가 담당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전기 요금도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 휘발유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저렴하지만, 전기차가 더 많이 보급되면 전기 요금도 조금씩 더 올라갈 것이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배출가스 없는 전기차를 사 주세요’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보다는 현재의 지갑 사정을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조금이 지급되고 전기 요금도 나름대로 저렴하니 전기차 구매를 생각이라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꽤 길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채우는 수준으로 전기차가 빠르고 편리하게 충전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만 그 때부터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팔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시대가 오려면 충전 기술과 인프라의 발전 그리고 막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되는데, 당당하게 앞장서는

곳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제대로 매달 수 있을까?

글 |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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