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T HAVE ITEM, 페라리 F8 스파이더

  • 기사입력 2020.11.19 16:38
  • 최종수정 2021.06.28 13:23
  • 기자명 모터매거진

쇼룸에 있을 때, 공도를 달릴 때, 그리고 촌스러운 식당 앞에 세워져 있어도 멋있다. 이 아름다운 자동차가 바람도 느끼게 해주니 더 바랄 게 없다. 패들에 유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튕길 때 맛은 기가 막히다. 너무 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움직임. 뚜렷한 경계선 없이 적당하게 조율하는 게 가장 세련되면서도 어렵다. 페라리 이름값에는 이러한 감각의 즐거움도 포함되어 있다. 스티어링 휠도 기가 막히게 생겼다. 자칫 보정을 잘못하면 장난감처럼 보일 수도 있을 만큼 이색적이다. 기억을 살려보면 488 GTB부터 거의 모든 페라리를 하루씩 타봤다. 많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브랜드의 모델을 다룰 때 신선함은 잃을 만도 한데 이놈의 페라리는 타도타도 긴장되고 낯설다. 단순히 비싸서는 아니다. 이보다 더 비싼 차를 탈 때도 이렇지는 않다. 페라리에게는 남자의 세포를 격하게 활성화시키는 마력이 분명 있다.     
보통차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콕핏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지금 시대의 옥좌다. 내 차는 아니지만 우월감이 몸을 감싼다. 자신감이 필요한 이라면 페라리만 사면 되겠다. 비현실적으로 낮고 넙데데한 슈퍼카지만 골목을 지나가도 식은땀이 흐르지 않는다. 마주 오는 차 혹은 행인들이 친절하게 비켜주니까. 과속방지턱을 습관처럼 대각선으로 넘었지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리프팅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웬만한 높이는 여유 있게 넘는다. 게다가 엔진회전수를 얌전하게 하면 가변 플랩이 닫혀 배기 사운드의 볼륨도 줄일 수 있다. 여자친구 이웃들을 위한 세팅이다. 다 좋아 보인다. 단점이 보이지도 않고 뭐가 단점인지도 모르겠다. 홀려 있기에 이성적 판단은 불가능하다. 

타이틀에 적혀 있듯 타고 있는 모델은 F8 스파이더다. 그렇다. 뚜껑이 열린다. 14초 만에 열고 닫히며 시속 45km까지 달리면서 작동 가능하다. 스파이더의 장점은 오픈에어링 외에도 리어 윈도를 내릴 수 있다는 것. 루프를 열고 달리면 비싼 돈 주고 숍에서 머리 만지고 나왔는데 헝클어트리기 아깝다. 이럴 때 맛보기로 리어 윈도만 열면 대기와 배기 소리, 그리고 공기 냄새가 전해져 노출되어 있는 느낌은 든다. 또한 비가 올 때도 빗소리와 엔진 사운드의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오픈톱 모델이 뒷창문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니 매력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예쁘게 생겼지만 마냥 곱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전 세대 488 시리즈보다 더 한 성격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헤드램프를 날카롭게 빚어 눈매가 매서운 게 이유 중 하나다. 아름다운 예술작품 모든 부분에 사연이 있다. 프런트 범퍼에서 보닛으로 이어지는 터널은 고속에서 들뜨는 앞머리를 겸손하게 숙여주게 만든다. 태생적으로 프런트 트랙션이 부족한 미드십의 약점을 시원하게 지웠다. 테일램프는 F8 트리뷰토에서 봤듯이 총알 두 발을 더 박았다. 디퓨저는 그저 폼으로 달아놓은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공기를 정리해주는 기능성 파츠다. F8 스파이더 외모에서 하이라이트는 루프 라인이다. 열고 닫힌다 해서 생색내지 않고 쿠페형에 준하는 실루엣을 가졌다. 쿠페보다 패널들 사이 이음새가 늘었지만 매끈함은 그대로다. 이 글은 11월 호에 실리지만 난 10월 초에 탔다. 뭘 해도 좋을 날씨에…. 뚜껑 열리는 빨간색 페라리와 선글라스는 준비되었다. 그럼 어디론가 출발하자. 주행질감은 역시나 F8 트리뷰토와 똑같다. 쿠페보다 조금 무거워진 공차중량을 엉덩이로 눈치챌 수 있는 예리한 운전자도 있겠지만 난 전혀 모르겠다. 그냥 엄청 빠르다. 캐빈룸 뒤에는 V8 3.9 트윈터보 엔진이 놓여 있다. 윤활 타입은 당연히 드라이섬프다. 이 엔진은 최고출력 720마력, 최대토크 78.5kg·m의 파워를 생산하고 리어 액슬로 전달한다. 변속기는 게트락 7단 듀얼 클러치 유닛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9초, 시속 200km까지는 8.2초다. 최고시속은 340km에 달하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미사일이다. 최근 차들의 출력이 올라가고 직업 특성상 이 정도 파워를 자주 접하지만 전기차처럼 지체 없는 가속력은 놀랍다. 더 경이로운 것은 트랙션이다. 뒷바퀴에 어마어마한 동력이 걸림에도 차가 똑바로 전진한다. 조타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내 손이 무안할 지경이다. 덕분에 운전자는 더욱 용감해지고 세상을 추월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차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게 차체 거동의 안정화를 가져다 준다. 고속에서도 차가 붕붕 뜨지 않고 노면에 바짝 무게중심을 낮추며 달린다. 고속안정감이 뛰어난 나머지 스피드미터가 가리키는 속도보다 체감 속도가 현저히 낮다. 특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추장스러운 리어 스포일러 없이도 공기를 다스리는 기술은 페라리에만 있는 것 같다.       

촬영을 핑계로 와인딩을 탔다. 규정 속도 내에서 놀 것이니 루프를 연다. 바람이 실내로 심하게 들이닥치지 않는다. 머리카락만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수준이다. 고속도로에서 열면 이 평화가 지켜질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오픈에어링은 저속에서 유유자적 다닐 때 그 향이 가장 진하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난 살짝 달릴 거다. 루프를 열었다고 해서 뒤가 더 무거워졌다거나 차체 강성이 떨어졌을까? 트랙에서 한계점까지 몰면 모르겠지만 공도에서 법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놀 때는 전혀 눈치 챌 수 없다. 카본 터브 타입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메인 프레임이 상상 그 이상으로 견고하다. 특히 복합 코너를 돌파하는 리듬이 훌륭하다. 섀시가 엉키지 않고 한쪽으로 쏠린 중량으로 반대쪽으로 자연스레 넘긴다. 간혹 오픈톱 스포츠카에서 느낄 수 있는 단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차체 강성은 오버 스펙으로 튜닝하고 댐퍼와 스프링은 유연하게 의도해 페라리가 지향하는 GT 장르에 교과서 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코너링 성향은 고의성이 다분한 언더스티어다. 벗어나는 범위가 크지 않아 스로틀 개폐량만으로 라인 수정이 쉽다. 스티어링 기어비가 촘촘해 피드백이 90% 정도 솔직하며 운전자가 몰라도 될 부분은 스스로 묻어두는 센스까지 겸비했다. 참고로 페라리는 프로 드라이버가 아니더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도와주는 브랜드다. 그 역할의 중심에 전자식 디퍼렌셜이 있다. 좌우 바퀴에 얼마나 똑똑하게 구동 배분을 했는지에 따라 차체 거동이 무너질 수도, 버틸 수도 있다. 페라리는 데이터 부자다. 운전자가 일부러 미끄러트리려는지 혹은 대응할 수 없는지 상황 판단이 가능할 정도로 전자식 디퍼렌셜, 스로틀 보디 등의 하드웨어에 로직을 씌웠다. 

밸런스가 좋아 주행안정화장치를 해제하지 않아도 비루한 내 운전실력에 잔소리하지 않는다. 여기에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다스리기에 충분하다. 프런트 398mm, 리어 360mm 카본 세라믹 디스크 로터에 건장한 성인 남성 팔뚝만한 캘리퍼를 물려 놓은 것만 봐도 믿음이 간다. 슈퍼카답게 브레이크 페달 답력은 강하지만 미세한 브레이킹 컨트롤에는 용이하다. 트랙에서 잽스텝을 가져가야 하는 경우에 빛을 낸다. 브레이크스티어나 노즈다이브 현상을 잘 억제했고 코너를 돌면서 속도를 줄여도 움찔하지 않는다. 게다가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걸려도 지치지 않는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특성상 열에 강하다. 연결 선상으로 열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동력이 약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심 가득한 촬영은 끝이 났다. 이제 F8 스파이더와 작별할 시간이다. 시승기가 아니라 타본 소감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깊이 있는 차인 만큼 짧은 시간 내에 이러쿵저러쿵하기 조심스럽다. 그래도 소감을 말하자면 좋다. 정말 좋다. 자동차 환자들 중에 차체 강성에 극도로 민감한 이들이 있는데 나도 그 중 하나다. F8 스파이더는 염려할 필요 없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10년 동안 주차해도 차체 변형이 오지 않을 거다. 튼튼한 몸에서 출력을 매너 있게 뿜어주고 낭만까지 만끽할 수 있다. 매력으로 치면 참 저렴한 차다. 꿈에서 돼지가 숫자 들고 나타나길….

21세기가 기억할 오픈에어링

# LAFERRARI APERTA
말이 필요 없다. 페라리의 왕이다. 역대 페라리 하이퍼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델이며 페라리 역사상 최초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했다.

# SCUDERIA SPIDER 16M스쿠데리아의 오픈톱 모델이다. 또한 미드십 스파이더의 하드코어 버전의 시작이기도 하다. 페라리에서 마지막으로 캔버스톱을 사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 CALIFORNIA비운의 모델이다. 못생겼다고 놀림도 받았지만 페라리에서 마지막 V8 자연흡기에 FR이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가치가 오를 것이다.

# 458 SPECIALE APERTA페라리는 458 시리즈에서 극강의 고회전 엔진을 보여줬다. 그 끝은 458 스페치알레다. 여기에 오픈에어링이 가능한 한정판이라면 최고의 재태크다.

# 488 PISTA SPIDER지금도 리셀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사실 가치를 올리는 마지막이라는 테마가 있지 않음에도 점점 비싸지고 있다. 역대 가장 트랙에 어울리는 오픈톱이라는 점이 부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SPECIFICATIO _ FERRARI F8 SPIDER길이×너비×높이  ​4611×1979×1206mm  |  휠베이스  ​​2650mm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3902cc최고출력  ​​720ps  |  최대토크  ​​78.5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5.6km/ℓ  |  가격  3억 후반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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