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 570S 스파이더 & 미니 쿠퍼 S 컨버터블 & 재규어 F-타입 P380 컨버터블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 로터스 엘리스 스포츠 220 & 롤스로이스 던

  • 기사입력 2018.05.15 17:01
  • 기자명 모터매거진

BRITISH OPENING CEREMONY

오랫동안 이 기획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그냥 영국 출신 오픈톱 모델들을 모으고 싶었다. 개성 넘치는 영국 브랜드답게 각기 다른 오픈에어링 스타일을 보여주니까. 한자리에 모아 기나긴 이야기를 만들었다. 꿈처럼 탔고 꿈에서 썼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맥라렌 570S 스파이더

Smoke On The Water – Deep Purple

술은 못하지만 클럽에서 노는 게 가장 재밌다. 춤추는 거 좋아하냐고? 아니 예쁜 여자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한다. 난 밤의 소통령이다. 허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유머가 그녀들에게 먹히질 않는다. 롤렉스와 지방시 셔츠로 부족하다. 도끼처럼 차로 나를 표현해야겠다. 클럽 앞에 슈퍼카들이 넘쳐난다.

이들과 다른 최고의 차를 찾고 싶었다. 나의 선택은 맥라렌 570S 스파이더다. 일단 외관부터 팍팍 튀고 오픈도 된다. 게다가 도어도 신기하게 하늘을 향해 열린다. 생소한 브랜드의 비싼 영국차가 나를 환하게 비춰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활활 타는 금요일에 클럽 앞에 닿았다. 클럽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 안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 톱을 열고 음악을 튼다. 클럽 음악에 지친 귀를 록으로 재생시켜주마. 딥 퍼플(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를 선택한다. 묵직한 사운드로 주목시키고 나의 존재를 알린다.

수많은 미녀들 중에 금발의 백인 아가씨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짧은 영어로 그녀를 부른다. 다가온다. 타란 소리는 안했는데 어느 순간 내 옆에 있다. 도어 핸들이 보이지 않아 쉽게 열수 없는데 그녀는 자연스럽게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름 끼친다.

우리말을 이다도시 아주머니 수준으로 하는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Elizabeth)이며 뉴질랜드에서 왔단다. 난 이 나라에 관해서는 마오리족 밖에 모른다. 어떻게든 마오리족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야한다. 갑자기 브루스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브루스? 내가 아는 브루스는 브루스 리와 브루스 윌리스 밖에 없다. 어떻게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을 모르냐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그녀 몰래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맥라렌 창립자다. 삼성 창립자가 이병철인 것 정도는 안다. 허나 코카콜라 매일 마신다고 해서 누가 만든 회사인지는 모르지 않나?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녀가 괜찮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내 차는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내차에 대해 그녀는 래퍼처럼 토해냈다.

시작은 카본 터브였다. 가볍고 강성이 좋아 슈퍼카에 적합한 레이아웃이라고 한다. 타고 내리기 힘들지만 650S 보다는 편한 편이란다. 난 그저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다. 머릿속에 그녀와 달콤한 분위기를 떠올리고 있는데 그녀는 과학 수업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출발한다. 목적지는 딱히 없다. 그냥 으슥한 곳이면 된다. 장소는 떠올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마음이 급한지라 가속 페달을 혹사시킨다. V8 3.8ℓ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70마력, 최대토크 61.2kg·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2초, 최고시속은 328km다. 엄청난 펀치력으로 비명을 지를 줄 알았더니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로 흐뭇해하고 있다. 바람을 느끼며 초고속으로 바람을 일으킨다. 대화가 불가능한데 그녀는 고래고래 나에게 소리친다.

영국의 레이싱 엔진 명가, 리카르도(Ricardo)의 엔진은 소리가 건조해 마음에 든다고 혼자 신났다. 여기에 물리는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이탈리아의 그라치아노(Graziano) 회사 것이라고 했다. 영국과 이탈리아가 만나 환상적인 파워트레인을 만들었다고 그녀는 감동했다.

이어 닭살이 일어난 팔뚝을 내게 보여준다. 나야말로 진심으로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환상적인 칙칙 폭폭 기차를 만들고 싶었다. 다운시프트를 해달라는 그녀의 부탁해 왼쪽 패들 시프트를 한번 튕겨준다. 엔진회전수가 올라가면서 부앙하는 소리에 그녀는 뭔가를 느낀 듯하다.

그녀가 파악이 잘 안되지만 예쁘니깐 참고 달린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신형 R8을 만났다. 마침 전방에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다. 그녀가 저 녀석에게 맥라렌의 힘을 보여 주라고 징징거린다. 저 아우디 스펙이 어찌되는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 꼭 이겨야한다.

내비게이션에서 카메라를 지났다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아우디가 폭발적인 사운드를 낸다. 역시 자연흡기 엔진 소리가 시원시원해 사랑스럽다고 하는 그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도발하는 뉘앙스는 눈치챘다. 나도 스로틀을 활짝 열어버린다.

막상막하일 줄 알았는데 내차가 바람을 가르며 조금씩 앞으로 나온다. 그러더니 점점 R8을 오른쪽 사이드미러에 담고 있다. 승리를 거둔 후 그녀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 순간으로 룸미러로 살짝 봤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원빈이 있었다. 만족감을 가득 안고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굽이진 길만 지나면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터가 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니 그녀의 눈에서 다시 레이저가 나온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보내는 리듬이 부드러우면서 빠르고 오픈톱 모델임에도 복합코너에서 섀시가 엉키지 않는다는 외계어를 다시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하려는데 그녀가 운전하고 싶다고 한다. 취미가 드리프트인데 여기서 도넛을 그리고 싶단다.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운전석을 내줬다.

시트포지션을 조정하면서 브레이크 페달 답력이 무거워 마음에 든다며 내게 미소 짓는다. 미세한 브레이킹 컨트롤이 가능한 레이싱 세팅이라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도넛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흔들더니 피드백이 빠르다고 엄지를 또 올린다.

그녀의 운전 실력에 감탄하면서 촬영에 집중한다. 흰 연기가 눈과 코를 맵게 했다. 손으로 연기를 걷어 냈을 때 이미 그녀는 떠났다. 맥라렌 570S 스파이더와 함께….

SPECIFICATION
MCLAREN 570S SPIDER
길이×너비×높이4530×1930×1202mm
휠베이스2670mm
무게1359kg
엔진형식8기통 트윈터보, 가솔린
배기량3799cc
최고출력570ps
최대토크 ​​​61.2kg·m
변속기7단 듀얼 클러치
구동방식RWD
서스펜션​​(모두)더블 위시본
타이어(앞)225/35 R 19, (뒤)285/35 R 20
0→시속 100km3.2초
최고속도시속 328km
복합연비9.3km/ℓ
CO₂ 배출량249.0g/km
가격2억7900만원~

 


미니 쿠퍼 S 컨버터블

Don’t Stop Me Now - Queen

나에겐 귀여운 조카 둘이 있다. 쌍둥이다. 이란성이지만 일란성으로 착각할 만큼 비슷하다. 때문에 누나가 한 명은 긴 머리에 웨이브를 살짝 줬고 다른 한명은 바가지를 씌워 놨다. 오늘 누나가 미션을 던졌다. 유치원에서 쌍둥이를 데려오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가끔씩 데리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일본산 스포츠 쿠페를 탔었는데 배기 튜닝이 되어 있어 애들이 좋아했다. 수동 모델이라 변속을 할 때마다 자기네들이 해보겠다며 내 손 위에 고사리 같은 손을 얹곤 했다. 그래도 이번에 새로 바꾼 차를 더 좋아할 것이다.

올망졸망한 눈빛의 미니 쿠퍼, 그것도 컨버터블을 샀다. 미니와 오픈톱 모델에 로망이 있었다. 루프가 어색했으면 JCW로 가려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옆태가 못생기지 않았다. 머플러 커터도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외관에서 아쉬움은 없지만 이번에 공개 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유니온 잭을 담은 테일램프가 눈에 아른거린다. 엄마에게 비밀이지만 벌써 주문 넣었다. 실내는 아기자기하다. 공조기 컨트롤러를 포함한 모든 게 동글동글하다. 다른 차는 잘 모르겠지만 미니의 스티어링 휠은 정말 동그랗다.

조금 늦었다.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에 둔다. 디스플레이에 로켓 모양이 등장한다. 이거 역시 귀엽다. 4기통 2.0ℓ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192마력, 최대토크 28.6kg·m의 힘을 생산한다.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는 빠른 변속으로 나의 장단을 맞춰준다. 컨버터블이라 무거워지긴 했어도 여전히 가볍다.

이정도 출력이면 충분히 빠르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난폭운전으로 신고당하지 않는 선에서 방향지시등을 켜며 요리조리 움직인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마다 들려오는 귀여운 백프레셔는 미니가 진정한 남자의 차라고 세상에 공표하는 듯하다.

서스펜션은 단단하다.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물러졌다고들 하지만 섀시의 강성이 올라가서 실질적인 움직임에서 손해 본 것은 없다. 승차감은 고급스럽게 가져가고 다이내믹 드라이빙을 받쳐주는 세팅이다. 이것이 최근 트렌드다.

여하튼 좌우롤링의 범위가 좁아 운전자가 적극적으로 스티어링 휠을 휘저을 수 있다. 스티어링 감도는 무겁다. 이두박근이 장난 아닌 나도 주차할 때 왼손만으로 돌리기 벅찰 정도다. 그렇지만 달릴 때는 오히려 조작하는 맛이 있다. 이것 또한 미니가 남자를 위한 차란 방증이다.

공도에서의 좌회전과 우회전이 즐겁다. 물론 유턴도 그렇다. 고카트 필링이 이런 것일까? 만만해서 극으로 몰아붙이는 부담이 없다. 전륜구동이지만 짧은 휠베이스로 뉴트럴스티어에 가까운 코너 라인을 그린다. 섀시가 버텨주는 횡그립 한계도 높아 타이어 스키드음이 늦게 찾아온다.

브레이크 시스템에 대해 말하자면 크게 불만은 없지만 제동거리가 생각보다 길다. 또한 강한 제동이 걸렸을 때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이 살짝 보인다. 돈이 모이면 애프터마켓의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갈아 탈 예정이다.

로켓 미니가 유치원에 도착했다. 조카 녀석들과 그 친구들이 내 차로 돌진한다. 벤치 클리어링을 하는 줄 알았다. 역시 순수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인기가 최고다.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 개구쟁이들이 미니를 마구 만지고 비비고 있다. 억지로 태연한척 한다.

얼마 전 유리막 시공을 했는데 그 돈이 하늘로 날아가는 게 보인다. 울적해진 것도 잠시 세상이 동화처럼 보인다. 꼬마들을 제지하는 선생님, 꿈에 그리던 내 이상형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내 마음을 빼앗겼다. 조카들에게 미안하지만 내 눈엔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쌍둥이를 뒷좌석에 앉힌다. 이어 루프를 개방한다. 꼬마 아가씨 둘은 난리가 났다. 출발하려 하는데 선생님도 어디론가 걸어가신다. 그녀에게 어디가시냐고 묻자 큰길에 볼일이 있어 나간다고 한다.

모셔다드리겠다는 나의 호의를 여러 번 뿌리쳤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 동승석에 타있다. 골목에 골목을 빠져나가면서 온갖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처음 본 조카의 선생님에게 집적거리는 철부지로 보면 어쩌지? 남자친구는 있을까?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할까?

어색한 기운이 감돌아 음악을 튼다. 이때 곡선정이 중요하다. 원래 록과 힙합을 즐겨듣지만 지금 틀었다간 쌍둥이에게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즐겨듣던 둘리의 비누방울 노래를 골랐다. 그녀가 샤프한 내 외모 속에 자상함을 발견할 것이다.

그런데 클릭을 잘 못했는지 퀸(Queen)의 ‘Don’t stop me now’가 들려온다. 의도치 않은 성공이다. 그녀가 흥얼거리고 있다. 게다가 12개의 스피커를 갖춘 하만 카돈 오디오 시스템은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보컬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나도 지금 멈출 수 없다. 적극적으로 나가야겠다.

큰길이 보이고 선생님은 내렸다. 차마 번호를 물어 볼 수는 없었다.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저기 그녀에게 손짓하는 남자가 있다. 재규어 F-타입 컨버터블 앞에서 온갖 폼은 다 잡고 있다. 남자친구는 아니겠지? 종교는 없지만 짧은 순간에 아는 신 모두에게 기도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둘은 포옹과 뽀뽀를 대낮에, 그것도 우리 조카들이 보고 있는데 한다. 누나 집에나 빨리 가야겠다. 애들은 계속 솜사탕이 먹고 싶다고 조르고 바람은 거세게 실내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윈드 디플렉터를 달면 그나마 괜찮을라나?

SPECIFICATION
MINI COOPER S CONVERTIBLE
길이×너비×높이3850×1727×1415mm
휠베이스2495mm
무게1350kg
엔진형식4기통 터보, 가솔린
배기량1998cc
최고출력192ps
최대토크 ​​​28.6kg·m
변속기6단 자동
구동방식FWD
서스펜션(앞)맥퍼슨 스트럿, (뒤)멀티링크
타이어(모두)205/45 R 17
0→시속 100km7.1초
최고속도시속 228km
복합연비12.1km/ℓ
CO₂ 배출량141.0g/km
가격4720만원

 


재규어 F-타입 P380 컨버터블

Creep - Radiohead

알고 지내는 유치원 선생님과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벌써 늦었다. 진짜 여자친구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1시간 전이다. 퇴근시간은 지났기 때문에 그리 막히지는 않을 것이다. 교제를 시작한 후로 한 번도 픽업 서비스가 없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1주년 기념 이벤트다.

사실 내 차를 그녀의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동료들과 함께 나를 찾는 장면 속에 내가 재규어 탄 왕자처럼 등장하는 것을 그렸다. 사랑스러운 내 여자친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승무원이며, 착하고 이상하리만큼 땅콩을 싫어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내 재규어가 눈을 부릅뜨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눌러 잠에서 깨운다. 으르렁거리며 이 고요한 공간의 평화를 깨버린다. 아이들링 시에도 소리가 커 차를 산 처음에는 눈치가 보였으나 지금은 에라 모르겠다.

배기 가변 플랩이 닫혀있어도 이러니 어찌할 수 없다. 재규어가 몸을 풀고 있을 때 ‘문콕’을 찾기 위해 차를 둘러본다. 스마트폰으로 비춰 봐도 없다. 다행이다. 내차지만 정말 잘 생겼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모델이라 SVR스러운 공격적인 범퍼가 가장 마음에 든다.

옆 실루엣도 근사하다. 쿠페가 더 예쁘다는 주위 의견도 많지만 클래식한 맛의 컨버터블 옆태가 내 취향이다. 차체 강성이 쿠페가 더 좋아 스포츠 드라이빙에 적합하겠지만 바람을 느끼며 달리지는 못한다. 또한 톱을 열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익스테리어의 미적지수를 올린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리어 스포일러도 쿠페의 것보다 훨씬 멋있다. 지금 재규어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되어 버린 얇은 테일램프는 F-타입이 원조다. 빵빵한 엉덩이 가운데 위치한 머플러 커터는 구경도 크고 연주 실력도 탁월하다.

E-타입 후손은 F-타입이라고 이안 칼럼 아저씨와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이제 출발한다. V6 3.0ℓ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46.9kg·m의 힘을 리어 액슬로 전달한다. 0→시속 100km는 4.9초, 최고시속은 278km에 달한다.

원래 수동변속기 모델을 사고 싶었지만 로터스를 타는 친구 녀석이 세컨드카가 아니라면 수동변속기는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자동변속기를 선택했다. ZF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믿음이 간다. 출력을 잘 전달하는 것 같다. 변속속도도 빨라 패들시프트를 튕기는 맛이 있다.

우리 집은 북한산 중턱에 있는 터라 외출의 시작은 좋건 싫건 와인딩이다. 눈감고도 달릴 수 있는 이 고갯길을 또 달린다. 오늘은 조금 더 속도를 올려야한다. 스티어링 피드백은 느긋하면서도 정확하다. 코너 성향은 살짝 언더스티어다.

허나 조급한 마음으로 탈출을 일찍 하려고 들면 살짝 테일 슬라이드를 만들면서 오버스티어가 일어난다. 카운터스티어를 잡으면서 난 이것을 즐긴다. 가벼운 중량은 아니지만 밸런스가 좋아 다루기가 쉽다. 다만 스티어링 휠의 직경이 더 작고 패들시프트는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부순환을 지나 공항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길들이기가 막 끝났으니 가속 페달을 마음껏 밟는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엔진이 빠릿빠릿하게 반응한다. 컴프레셔로 배기 사운드와 함께 엔진 리스폰스를 살렸다. 원하는 만큼 쭉쭉 뻗어나간다. 거기에 박력 터지는 배기 사운드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스로틀이 닫힐 때의 백프레셔는 하이라이트이자 내가 이 녀석을 선택한 이유. 고속주행 안정감도 괜찮고 급격하게 차선을 이동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제동성능이 듬직하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 공항에 거의 닿았다. 이어 그녀에게 전화가 온다. 도착했고 밖으로 나오는 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잘됐다. 뚜껑을 열 시간을 벌었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소프트톱을 제거한다. 룸미러로 헤어스타일을 한 번 더 만지고 어두운 저녁이지만 선글라스도 쓴다.

글로브 박스에서 향수도 꺼내 대충 뿌린다. 영화 관상의 이정재보다 더 인상적인 등장을 위해서는 음악도 필요하다. 지금 내 모습이 자칫 날라리처럼 보일 수 있기에 음악은 차분한 게 좋을 것 같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을 골랐다.

마저 남은 거리를 오픈에어링으로 줄이겠다. 헤어스타일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바람은 스쳐지나갈 뿐이다. 지금이 뚜껑을 열고 다니기 가장 좋은 온도다. 저녁 공기가 살짝 차가우면서 상쾌하다. 더욱 배기 사운드가 또렷이 들린다.

학창시절 수도 없이 들었지만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으로 전해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소리가 대기로 퍼지지 않고 내 귀로 정확하게 전달된다. 오픈을 하더라도 볼륨을 크게 높일 필요가 없다. 바람과 음악, 그리고 저녁의 선글라스는 나를 취하게 만든다.

취기와 함께 공항에 도착했다. 저기 여자친구와 그 동료들이 보인다. 나를 향해 손짓하는 그녀를 향해 달린다. 다운시프트와 함께 백프레셔를 두 번 터트리면서 그녀의 앞에 차를 세웠다. 터프하게 내려 그녀와 동료들에게 눈인사를 한다. 동료들은 질투 반, 부러움 반으로 나를 째려본다.

괜찮다. 나는 잘 생겼으니까. 동승석 도어를 열고 영국 신차처럼 그녀를 태우고 트렁크에 그녀의 캐리어를 넣으려 하는 순간, 캐리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안전벨트를 메고 있는 그녀 곁으로 가 속삭인다. “미안하다, 내려서 버스타고 와. 이따 보자.”

SPECIFICATION
JAGUAR F-TYPE P380 CONVERTIBLE
길이×너비×높이4482×1923×1308mm
휠베이스2622mm
무게1730kg
엔진형식6기통 슈퍼차저, 가솔린
배기량2995cc
최고출력380ps
최대토크 ​​​46.9kg·m
변속기8단 자동
구동방식RWD
서스펜션​​(모두)더블 위시본
타이어(앞)255/35 R 20, (뒤)295/30 R 20
0→시속 100km4.9초
최고속도시속 275km
복합연비8.6km/ℓ
CO₂ 배출량198g/km
가격1억3740만원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Viva La Vida - Coldplay

내가 사는 곳은 아르헨티나. 당신이 좋아하는 리오넬 메시의 나라다. 초등학교 때 이민 왔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많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차를 좋아한다. 차를 잘 알지 못하지만 운전을 좋아한다. 폭주족처럼 달리지 않고 혼자 유유히 달리는 타입이다.

마음껏 오디오 볼륨을 키울 수 있고 사색에 빠질 수 있다. 캠핑도 좋아한다. 조용한 숲에서 책을 읽는 평화는 나만의 특권이다. 이번에 일을 저지른다. 이과수(Iguazu) 폭포를 보러 홀로 떠난다.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과 함께….

이 녀석을 선택한 이유는 많다. 먼저 땅땅한 체구와 세련된 마스크가 매력적이었다. 덩치에 비해 작은 헤드램프와 테일램프의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인테리어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오픈에어링을 즐기고 싶었다.

또한 우리 동네 도로 포장이 깨끗하지 않기에 지상고가 낮은 차는 부담스러워 SUV가 이상적이었다. 허나 SUV임에도 트렁크는 크지 않다. 때문에 이번 여행에 가져갈 짐을 동승석과 2열 시트에도 올렸다. 텐트와 침낭, 코펠, 버너, 그리고 라면과 초코바, 생수가 다 들어가긴 한다.

이제 떠난다. 출발과 함께 루프를 걷어낸다. 윈드 디플렉터는 없지만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들이닥치지도 않고 살랑살랑 잘도 지나간다. SUV 시트포지션에서 누리는 오픈에어링은 롤스로이스 던 부럽지 않다. 미지근하고 습기 가득한 공기일지라도 난 즐겁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갓길로 차를 빼면서 속도를 줄인다. 브로셔에서 시속 49km까지 작동가능하다고 하니 일단 속도를 줄인다. 움직이면서 닫힌다. 닫고 나니 로맨틱하다. 비오는 날 노천 카페 파라솔 아래 있는 것 같다. 빗방울이 루프에 닿는 소리가 감수성을 자극한다.

노면이 미끄러워졌지만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다. 고속안정감이 훌륭하다. 바닥에 깔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붕붕 뜨지 않는다. 꽤 파워풀하게 달려 나간다. 4기통 2.0ℓ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의 힘을 9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전달한다.

비록 0→시속 100km는 10초를 넘어가지만 보통의 운전자인 나는 답답함을 느끼기 어렵다. 변속기가 두툼한 토크가 나오는 영역을 향해 최적의 기어를 빨리 물려주는 덕분이다. 더구나 디젤 엔진이라 엔진회전수를 높게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다.

서스펜션은 단단하다. 댐퍼 스트로크는 길지만 스프링레이트는 높아 제법 탄탄한 느낌이 든다. 코너링 성능이 무게중심이 높은 거에 비해 준수하다. 언더스티어 현상이 일어나지만 진입속도만 적절하게 낮추면 깔끔한 코너 라인을 그릴 수 있다. 스티어링 휠 감도는 가볍지만 피드백은 솔직하다.

또한 영국차답게 브레이크 시스템은 파워트레인을 압도한다. 노즈다이브나 브레이크스티어가 잘 억제되어 있고 코너 중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는다. 거기에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이과수 폭포까지는 이제 20여km 밖에 남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졌기에 캠핑장에서 잠을 자고 밝을 때 아름다운 장관을 감상하기로 한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진흙탕이다. 브랜드는 믿지만 생긴 게 오프로드와는 전혀 상관없게 생겨 신뢰가 딱히 가지 않는다.

담당 딜러가 오프로드 성능이 장난 아니라고 엄지를 치켜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속 페달을 살짝 건들면서 전진한다. 휠 스핀을 일으키지 않고 쉽게 전진한다. 피할 수 없는 호수만한 물구덩이도 문제없었다. 차고가 높아 하체를 긁히지 않고 무사히 캠핑장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불빛도 없다. 무섭다. 그냥 내려가서 숙소를 찾을까 생각했지만 오기가 생겼다. 오늘 난 여기서 자겠다. LED 헤드램프로 주위를 환하게 만든 후 텐트를 친다. 원터치 타입이라 금방 완성했다. 출출한지라 라면 하나를 끓인다.

보글보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이 때, 이보크와 함께 이 정글에서 함께하는 순간이 벌써 추억이 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을 담고 식사에 돌입한다. 코펠 뚜껑에 덜어 후후 불어 몇 젓가락 하니 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국물을 버릴 데도 없으니 다 마셔버린다.

이어 디저트 초코바를 먹으면서 낭만을 만끽한다. 이때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다. 가방을 뒤져봐도 블루투스 스피커가 없다. 깜빡했지만 괜찮다. 나에겐 이보크가 있다. 메리디안 스피커는 블루투스 스피커보다 딱 10배 더 성능이 우수하다. 베이스가 묵지하고 보컬의 가사 전달이 잘 된다.

차를 살 때 나를 끌어당겼던 부분 중 하나다. 플레이리스트에서 콜드플레이(Coldplay)의 ‘Viva La Vida’를 선택한다.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의 연주가 산속에 울려 퍼진다. 대형 이벤트에 어울리는 사운드가 나를 닭살 돋게 만든다.

팔뚝을 비비고 있는데 갑자기 재규어가 나타났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밤에도 무늬가 선명한 진짜 재규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덤빌 것 같아 숨도 쉴 수 없다. 내 차를 가리키며 우린 친구라는 손짓을 해본다. 분명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눈빛으로 쏜다.

자기 구역에서 라면 냄새를 풍겨 싫었을까? 뒤처리 깔끔하게 잘 하라는 것 같다. 그동안 즐기기만 하고 치우지 않고 떠난 이들을 많이 본 듯하다. 깨끗한 코펠과 쓰레기를 모아둔 봉지를 보여주니 정글의 보안관 재규어는 뒤돌아 사라졌다. 이렇게 책임감 넘치는 재규어는 처음 봤다.

SPECIFICATION
LAND ROVER RANGE ROVER EVOQUE CONVERTIBLE
길이×너비×높이4370×1900×1609mm
휠베이스2660mm
무게2080kg
엔진형식4기통, 디젤
배기량1999cc
최고출력180ps
최대토크 ​​​43.9kg·m
변속기9단 자동
구동방식AWD
서스펜션(앞)맥퍼슨 스트럿, (뒤)멀티링크
타이어(모두)245/45 R 20
0→시속 100km10.3초
최고속도시속 195km
복합연비12.4km/ℓ
CO₂ 배출량156.0g/km
가격9480만원

 


로터스 엘리스 스포츠 220

Psycho - Muse

산악 동호회 채팅방에 공지가 떴다. 주말에 와인딩 모임이 드디어 잡혔다.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회원들은 아직 내가 새 차를 뽑은 것을 모르고 있다. 이 동호회에서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돈이 발린 튜닝카나 하드코어차를 남자의 차라면서 인정해준다.

그렇기에 그들이 내차를 보고 눈이 뒤집힐 게 분명하다. 난 로터스 엘리스 스포츠 220을 가지고 갈 테니까. 사자마자 우리 엄마를 포함한 주위 여성분들에게 수없이 잔소리 폭격을 당했지만 난 이겨냈다. 이번 주 와인딩에서 주인공이 될 것이니….

그 날은 오고 말았다. 아직 차가 낯설다. 일단 타는 것부터가 남다르다. 작은 차에 몸을 구겨 넣으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BB크림이 흘러내린다. 진땀이 식을 새 없다. 오랜만에 만난 수동변속기라 두려움이 앞선다. 그나마 클러치가 예민하지도, 그리고 무겁지도 않아 다행이다.

느긋하게 1차 만남 장소인 남양주 톨게이트로 향한다. 생각보다 그리 빠르지 않는다. 가벼운 게 장땡인줄 알았지만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정도는 아니다. 이른 아침이라 나 홀로 다녀 이러리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먼저 도착한 산악 회원들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내리니 일동 박수가 터져 나온다. 다들 나는 뒷전이고 차를 구경하느라 바쁘다. 로터스 배지, 버킷 시트, 수동변속기, 그리고 네오바 타이어 조합은 이들을 미치게 했다. 차가 장난감 같이 예쁘긴 하다.

이것이 바로 성인 남성 허리 보다 낮은 높이, 세 걸음 정도 되는 길이의 영국산 성인 장난감이다. 디테일은 살아있다. 군데군데 뚫려 있는 에어덕트는 기능을 재껴두더라도 공격적인 이미지를 연출해줘 마음에 든다. 보기와 달리 지상고가 그리 낮지 않아 과속방지턱이나 지하주차장 걱정할 필요 없는 것도 좋다.

15분 정도 지나니 모든 회원이 모였다. 본격적으로 모임은 시작된 것이다. 뚜껑을 열지 말지 고민된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란 것을 한 번 더 강조하기 위해 열기로 한다. 친한 회원을 불러 톱을 함께 열자고 부탁한다. 체결 부위를 해제하고 캔버스 톱을 김밥처럼 돌돌 만다.

또 한 번의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그래 저게 진짜배기 남자차지!”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는데 잠깐의 시간동안 내가 남자란 사실을 그들은 계속 일깨워준다. 굉음을 내며 출발하는 차들을 따라 나도 고속도로에 합류한다.

바람이 무자비하게 들이닥칠 것 같았다. 허나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며 잘도 지나간다. 또한 톱이 닫힌 상태에도 수 만 가지 잡소리로 차가 시끄러웠는데 열고나니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오히려 귀가 편안하다. 역시 운전자에 대한 매너가 몸에 배인 로터스다.

안전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는데 C63 AMG(W204)가 내 옆으로 와 나란히 달린다. 평소에도 본인 차에 자부심이 심해 얄미웠는데 뭔가 보여주고 싶다. 더블 클러치를 작렬하면서 6단에 넣어 뒀던 기어를 3단으로 내리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비록 ‘일본 아방이’ 코롤라의 심장이지만 매그너슨 컴프레셔를 더해 최고출력 220마력, 최대토크 25.5kg·m의 힘을 가졌다. 무게는 1t이 되지 않기 때문에 승부를 걸어볼만하다. 처음에 나란히 가는 줄 알았다. 배기량이 깡패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산에서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중미산으로 들어오면서 오디오를 켰다. 학창시절 공부할 때 이어폰을 꼽아야 집중이 잘 됐다. 지금 인생 최고로 집중해야하는 순간이다. 노래는 뮤즈(Muse)의 ‘Psycho’다. 분노의 찬 로터스 오너가 작정하면 와인딩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보여주겠다.

리벤지 매치는 성사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C63이 내 뒤에 있게 된 것. 다운힐이라 간격을 더 벌릴 수 있을 것 같다. 댐퍼는 빌스테인, 스프링은 아이박이 만들었다. 영국차를 좋아하지만 독일산은 항상 믿음이 간다. 짧은 직선 구간을 달리다 코너가 나왔다.

오른 발목을 뒤틀면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채 가속 페달을 튕기고 3단에서 2단으로 기어를 바꾼다. 오랜만에 하는 힐 앤 토라 발가락에 쥐가 살짝 나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 차체가 울컥했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는데 이 장면의 유일한 목격자가 C63 오너라는 게 나를 더욱 불 질렀다.

내가 형편없음에도 엘리스는 환상적인 코너링을 보여준다. 섀시가 탄탄하고 차체가 가볍고 밸런스가 좋아 횡그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내리막에서 프런트 그립이 더 살아나 더욱 공격적으로 코너에 들이댈 수 있다. 이게 뉴트럴스티어다.

출력도 만만해 코너 탈출 전 가속 페달을 일찍 가져가도 무섭지 않다. 사이드미러를 쳐다볼 여력도 없이 달리면서 복합코너를 지나니 C63의 배기 사운드가 들리지 않는다. 이겼나?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 이때 잠깐 쉬자는 회장의 무전이 날아온다.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와 스마트폰으로 헤어스타일 정리를 한다. 눈앞에 마즙이 대령되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C63 오너다. 잠실에서 가장 유명한 짠돌이인데 나에게 이 귀한 마즙을? 게다가 꿀까지 듬뿍 얹혀 있다.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머뭇머뭇대더니 그가 지루한 날씨 이야기로 입을 연다. 내 몸을 생각해줬으니 적극적으로 말동무를 해줬다. 편해졌는지 본론을 말한다. 질문 공세다. 취등록까지해서 얼마 드셨어요? 타시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A/S는 어때요? 끝이 없다. 자식(피식)!

SPECIFICATION
LOTUS ELISE SPORT 220
길이×너비×높이3824×1850×1117mm
휠베이스2300mm
무게914kg
엔진형식4기통 슈퍼차저, 가솔린
배기량1798cc
최고출력220ps
최대토크 ​​​25.5kg·m
변속기6단 수동
구동방식RWD
서스펜션​​(모두)더블 위시본
타이어(앞)175/55 R 16, (뒤)225/45 R 17
0→시속 100km4.6초
최고속도시속 234km
복합연비13.3km/ℓ
CO₂ 배출량173.0g/km
가격8350만원

 


롤스로이스 던

Stairway To Heaven – Led Zeppelin

불타는 금요일이란다. 클럽 가자는 녀석이 얄밉기까지 하다. 10시가 넘었지만 여전히 넥타이를 풀지 못했다. 난 책임감 넘치는 놈이니 비쭉 튀어 나온 입을 집어넣고 일에 집중한다. 불굴의 의지로 새벽 4시가 넘었을 때 깔끔하게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회사 주차장으로 가 내 차로 향한다.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컨버터블이 지하세계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내차다. 지난달 내 생일에 받은 성과금으로 내 자신에게 준 선물, 롤스로이스 던이다. 요트를 사고 싶었으나 돈이 부족해 바퀴 달린 영국산 요트를 구매한 것이다.

공산품 하나로 난 고액연봉자에서 황태자로 신분 상승했다. 품위 넘치는 외모는 세상을 압도한다. 풍채가 크면서도 늘씬하다. 전장이 5m가 넘지만 심심한 구석은 없다. 파르테논 신전은 나를 경건하게 만들고 그 위에 환희의 여신은 나를 지켜준다.

바퀴가 굴러가더라도 중심을 잡고 있는 배지는 찰스 롤스(Charles Rolls)와 헨리 로이스(Henry Royce)를 기억한다. 사실 BMW에 인수합병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 분위기 좋으니 그냥 넘어가자. 여하튼 남빛이 발린 루프는 구김 없이 매끈해 아름다운 라인을 해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평범하지 않다. 남들과 반대로 열리는 코치도어는 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닫을 때는 도어 캐치가 멀어 어떻게 하냐고? 간단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닫힌다. 사실 이동 장소마다 열고 닫아주는 이가 있어 이 버튼을 많이 눌러보지는 못했다. 가죽향이 코를 찌른다.

명품관을 통째로 담았다. 이 금속덩어리 안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소가 잡혔다. 소띠에 황소자리인 내가 롤스로이스를 대신해 조의를 표한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한 덕분에 최고급 가죽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 부드럽다.

그만 느끼고 출발해야지.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눌러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시동이 켜진 것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다. 오픈톱 모델이지만 패브릭 6겹의 루프는 세상과 단절시킨다. 방해하는 잡소리 하나 없다. 너무 고요한 나머지 유령이 나올 것만 같다.

무섭기도 하고 도로가 한적하니 조금 밟아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 V12 6.6ℓ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63마력, 최대토크 79.6kg·m의 파워로 뒷바퀴를 굴린다. 8단 자동변속기가 내조를 잘해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5초 만에 도달한다.

괴력을 지녔음에도 엔진은 절대 촐랑대지 않는다. 근엄하게 출력을 도로에 뿌리며 미끄러지듯 전진한다.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힘은 남아돈다. 추월을 할 때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이 정도면 스포츠카들이 둔하다고 놀릴 수 없을 것이다. 눈 깜짝할 새 스피드미터 바늘은 200을 넘어서고 있다.

거기에 차체가 붕 떠서 날아다니는 것 같다. 그 누구도 섀시와 서스펜션이 형편없어 붕 뜨는 차와 비교하지는 않겠지? 요철의 충격을 운전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롤스로이스가 왕인 이유다. VVIP를 거슬리게 하는 부분을 한 치도 허락하지 않는다.

앞으로만 잘 달리는 것은 아니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어 보면 피드백이 느긋하면서 정확하다. 좌우롤링이 그리 심하지 않다. 때문에 코너링 퍼포먼스 한계가 생각보다 높다. 언더스티어 세팅이지만 라인을 벗어나는 범위가 크지 않다.

탈출할 때 가속 페달에 발을 일찍 가져가더라도 엉덩이가 실룩거리지 않는다. 과감하게 꼬불꼬불한 길을 이 덩치로 들이댈 수 있는 것은 믿음직스러운 브레이크 시스템 덕분이다. 정확하게 속도를 줄이면서 나의 리듬을 깨지 않는다. 브레이크스티어와 노즈다이브 현상도 잘 억제되었다.

새벽을 닫으러 가는 길에 음악으로 나의 피로를 덜어버려야겠다. 지금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이 나에게 어울린다. 지미 페이지(Jimmy Page)의 기타는 울고 있고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는 말한다.

반짝이는 건 모두 금이라 믿는 그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 하는 그녀. 개울가 나무 위에서 새들이 노래한다.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반지를 만든다. 숲은 웃음소리로 메아리친다. 5월의 여왕을 위한 봄청소. 그녀가 바람소리를 들었을까? 그녀의 계단이 그 바람에 놓였는데….

나 혼자였지만 너무 오글거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속도를 줄인 후 루프를 열어본다. 시속 50km 이하에서 20초면 하늘을 영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사고 나서 두 번째다. 출고할 때 열었다 쏟아지는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잘 생긴 얼굴이지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지금은 주위에 택시들만이 질주하고 있다. 다시 속도를 붙인다. 어제 만졌던 기름진 머리카락이 살랑살랑­­거릴 뿐 바람은 천박하게 안으로 들이 닥치지 않는다. 새벽 공기가 셔츠 사이로 유입될 때, 왼팔을 도어에 걸쳐 나를 우주에 알린다.

여의도에서 강남에 위치한 집까지 가장 낭만적으로 오는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집에 도착했다. 주차를 위해 자리를 탐색한다.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다른 차가 세워져 있다. 어쩔 수 없이 이중 주차를 한다. 대시보드에 명함 한 장을 올리고 집으로 올라간다.

마침 고시원 이모님이 아침을 준비하고 계신다. 허기가 져 컵라면에 찬밥 말아먹으려 했는데 정말 운 좋다. 미역국에 있는 소고기를 먼저 가져갈 수 있다. 신나게 식사를 마치고 내 차가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내려간다. 롤스로이스 던이 없다. 이것이 꿈에서 꾼 꿈에서 탄 꿈의 차다.

SPECIFICATION
ROLLS-ROYCE DAWN
길이×너비×높이5285×1947×1502mm
휠베이스3112mm
무게2560kg
엔진형식12기통 트윈터보, 가솔린
배기량6592cc
최고출력563ps
최대토크 ​​​79.6kg·m
변속기8단 자동
구동방식RWD
서스펜션(앞)더블 위시본, (뒤)멀티링크
타이어(앞)255/45 R 20, (뒤)285/40 R 20
0→시속 100km5.0초
최고속도시속 275km
복합연비5.9km/ℓ
CO₂ 배출량330.0g/km
가격4억5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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