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GR 수프라, YOUR LIE IN APRIL

  • 기사입력 2020.10.28 20:30
  • 최종수정 2021.06.28 15:53
  • 기자명 모터매거진

활짝 핀 벚꽃 아래에서 수프라를 만났다. 시간은 가속했고, 내 운명은 변하기 시작했다. 무채색의 세상이 서서히 색을 입기 시작했다. 세상이 그렇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분명히 짜릿함을 줄 수 있을 것이라던, 다른 이들이 전부 부러워할 만한 자동차의 스티어링을 잡고 있음에도 세상은 막상 빠르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저 단조로운 회색 빛 아래 흐릿하게 색상이 흐르더라도 잠시일 뿐, 흐르는 빛을 잡다가 어느새 되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무 색상도 없는 무미건조한 세상이 돌아와 버린다. 얼마 안 된 과거이지만 그 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분명 십 년, 아니 이십 년 전만 해도 짜릿할 일이 많았다. 세상은 색으로 채워져 있었고, 다들 밤을 지새며 달리면서도 지칠 줄 몰랐다. 그것이 꼭 속도를 겨루는, 그리고 담력을 대결하는 무언가가 아니라도 좋았다.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업무, 그리고 아르바이트에 힘들어 하면서도 스티어링만 잡으면 생기가 넘쳤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아니 세상을 알면 알게 될수록 지쳐갔고 덩달아 자동차들도 재미를 빼기 시작했다. 그저 많이 팔려야 된다는 이유만으로.어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반쯤은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산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 즈음에서 만났다. 따뜻함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그 봄에, 수프라를 만났다. 내 마음속에서 브라이언과 함께 저 멀리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갔던 그 수프라가,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마음속에 있던 무채색의 세계를 화려한 노란색으로 채워가며….

Eloim Essaim, 이 내가 갈구하며 호소할지니

변했다. 수프라의 이름을 잇고 있음에도, 그리고 직렬 6기통 엔진과 후륜구동이라는 고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수프라의 얼굴이 보인다는 점이 신기하다. 수프라라는 큰 틀만 남겨두고 자유분방함을 그린 그 모습은 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수프라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실용적이지만 짜릿함은 없었던 토요타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추구했던 자유로움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에 차들이 품고 있었던 쾌활함까지도 느껴진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머리가 들어가는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파낸 더블버블 루프, 2인승 쿠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극단까지 추구하는 라인, 스포츠카다운 뒤태를 보여주는 두터운 펜더, 그리고 여기서 이어지는 날렵한 테일램프. 달리는 것을 넘어 사실은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음을 숨기지 않는다. 마치 경직된 세상에 활력을 넣는 것처럼.그 모습이 안으로 들어오면 조금 부서지고 만다. 많은 것을 추구했지만 결국 BMW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숨기지 못한 채, 안에는 그 흔적을 조금 강하게 남기고 말았다. 스티어링 휠도,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도, 그리고 센터 터널에 있는 아이드라이브도 BMW의 영향을 받았음을 그대로 알려주고 만다. 운전 중에는 그곳으로 눈이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운전 중 많이 쳐다보게 되는 계기판은 다행히 수프라만의 짜릿함을 담고 있다.

4인승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2인승으로 다듬어지고 만 시트는 스포츠카다운 움직임을 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레이아웃이다. 정밀한 움직임 그 하나만을 위해 황금 비율을 추구한 수프라에게 이제 더 이상 약간의 실용성을 담은 뒷자리는 없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제법 용량이 되는 트렁크가 있다는 것이다. 짜릿함을 즐기다가 급하게 살 것이 생각났을 때, 담아올 공간은 있는 셈이다.오디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수프라의 소리 그 자체가 오케스트라이니 말이다. 만약 수프라를 ‘그저 BMW의 엔진과 변속기를 가지고 만 또 다른 BMW’라고 우습게 본다면,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놀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놀라지 않는다면, 센터 콘솔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스포츠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운전 중 보이는 모든 광경이 바뀐다. 엔진의 회전, 배기음, 그리고 땅으로부터 스티어링으로 전해지는 잔잔한 진동까지도.

짜릿함을 전하며 돌아가는 엔진이 머플러를 자극하면, 이에 응하는 것처럼 깨끗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자연스러운 머플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운드 제너레이터 같이 운전자를 속이는 기믹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이전에 추구하다 어느새 잊어버리고 만, 스포츠카만이 줄 수 있는 순수함의 오케스트라. 충격 속에서 피아노를 놓아버렸던 그가 다시 연주하는 그 선율처럼, 마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녀와 연결된 것처럼.콩쿠르 무대같이 매끈하고 잘 다듬어진 서킷보다는 조금 거친 야외 무대 같은 일반도로가 잘 어울린다. 언제부터 음악이 장엄한 객석에 앉아서 고급스럽게 즐겨야만 하는 것이었던가! 어느 곳이든 피아노를 치면, 바이올린을 들면 그곳이 무대인 것을. 그렇게 즐겨야 한다. 아니, 그렇게 즐겨야 할 것이다. 수프라는 그것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깨끗한 무대에서 완벽하기 보다는 조금 어지럽더라도 진심으로 즐거워서 신명나는 연주를 하고 마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BMW라고 쉽게 치부할 수 없다. 수프라의 멋과 맛은 오로지 수프라만의 것이다. 비록 과거에 추구했던 머슬카와 같은 뚝심의 그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세련되고 유려한 움직임을 갖고 있지만 그것 역시 수프라 특유의 맛이다. 그렇다. 이 녀석은 분명히 토요타, 그리고 수프라다. 그녀의 바이올린 소리가, 그리고 그의 피아노 소리가 분명히 쇼팽의 그 소리였던 것처럼 Z4도 아닌 BMW도 아닌 오랜만에 부활한 수프라의 소리, 그리고 감성이다.

단 하나의 거짓말

수프라를 처음 보았던 어린 시절, 그 때의 느낌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어색한 것도 같았던, 미국식 머슬카를 어설프게 따라한 것 같았던 수프라는 시동을 걸고 음색을 들려주는 순간부터 동경이 되었다. 그 소리는 세상에 색을 주었고 짜릿한 움직임은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 움직임에 놀라 다른 차들이 밀려나는 순간에도, 수프라만은 달려나갔고 그렇게 청년의 빛까지도 어느새 채가 버리고 말았다.

딱 하나의 거짓말로 인해 새로운 수프라가 다가왔을 때, 그 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상과는 조금 달라서. 생각보다 안이 어두웠고, BMW의 부품들이 남아있는 모습은 잠시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토요타의 스포츠카다운 모습을 보여줬고 생각처럼 짜릿하면서 상냥했다. 오랜만에 산길을 달리며 기분이 좋았고,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달리며 머플러에서 나는 짜릿한 소리에 행복함을 느꼈다.평소에도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르는 사소함이겠지만, 수프라와 함께 있으니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제대로 살고 있는, 그래서 제대로 된 스포츠카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퓨어 스포츠로 남을 수 있다. 점점 심해지는 환경규제 속에서 수프라가 태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프리우스를 스쳐 지나가며, 이제는 마지막이 될 토요타의 순수 내연기관 수프라에게 “좋아, 좋아”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여본다.

수프라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어느새 이 도시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니, 저 멀리 저녁 노을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잎이 겹쳐진다. 그 속에서 잠시나마 수프라의 환영이 보였다가 사라진다.곧 봄이 온다. 너와 만난 봄이 온다. 네가 없는 봄이… 오고 있다.

SPECIFICATION _ TOYOTA GR SUPRA길이×너비×높이  4380×1855×1305mm | 휠베이스 ​​2470mm엔진형식 I6 터보, 가솔린  |  배기량 ​​​2998cc  |  최고출력  340ps최대토크  51.0kg·m  |  변속기  ​​​​​​8단 자동  |  구동방식  RWD복합연비  9.7km/ℓ​  |  가격  ​​​​​​7380만원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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