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e-208, 욕심은 더 부리지 말자

  • 기사입력 2020.10.28 20:16
  • 최종수정 2021.06.28 15:52
  • 기자명 모터매거진

디젤 모델만 판매하던 푸조가 이제 전기차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소형 해치백인 208. 이 복잡한 도심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제법 실용적인 전기차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는 독일이지만, 그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상용화한 나라는 프랑스다. 최초의 자동차 레이스도 프랑스에서 개최됐고, 그래서 국제 자동차 연맹(FIA)도 미국이나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에 있다. 그리고 그런 프랑스 출신의 자동차들은 독특함과 실용성을 동시에 안고 진화를 거쳐왔다. 프랑스 내 세금 규제로 인해 대배기량 모델이 제대로 등장하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 가족이 사용할 수 있도록 다듬어져 온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자동차들은 유럽 내에서 꽤 인기를 얻고 있고 그 중에서도 푸조는 스포츠와 디자인을 동시에 앞세우며 입지를 구축해 오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국내에서는 그리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가솔린 엔진의 판매가 한동안 중지되면서 디젤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고, 독일 브랜드가 일으킨 디젤게이트의 불똥이 그리 큰 상관이 없는 푸조에도 튀고 말았다. 판매 대수를 높이겠다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 푸조가 이번에 내세운 것이 바로 전기차다. ‘자동차만 고르면 파워트레인은 입맛대로 선택한다’는 전략을 수립하며 가솔린과 디젤, 전기모터를 모두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내년 즈음에는 가솔린 모델도 수입될 예정이지만, 일단은 전기차가 먼저 들어왔다. 그래서 푸조의 전기차는 과연 어떤 것이 다른지 알고 싶었다. 디젤 엔진에서 극단적인 연비와 효율을 추구하는 푸조라면, 어쩌면 전기차도 그런 효율을 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송곳니를 드러낸 귀여운 사자

그동안 푸조 또는 시트로엥이 미니와 대결해 본 적이 꽤 많다. 그리고 디자인에서 미니가 특별함을 보여준 적은 꽤 있지만, 푸조가 특별함을 보여준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조금 흐른 현재, 아직까지는 미니 전기차가 국내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이제 적어도 푸조는 미니와 겨룰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디자인이 주는 강렬함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들어 변화를 시작한 푸조의 디자인이 이제서야 그 빛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사자의 송곳니’를 닮은 LED 주간주행등이다. 신형 508부터 그 존재를 드러냈던 것인데 차체가 작은 208에서 세로로 긴 송곳니가 드러나니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낮에도 꽤 멋이 있지만, 어스름 즈음에 헤드램프가 완전히 점등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송곳니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전면을 가득 채우는 그릴은 검은색을 기반으로 차체 색상이 혼합된 수많은 큐브가 배열되어 있어 멋이 배가된다.차체 길이가 4m가 겨우 넘기 때문에 굉장히 짧은 셈이지만, 보닛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고 지붕이 꽤 낮은 편이기 때문에 땅딸막하다는 느낌은 없다. 휠하우스는 검은색을 둘러 약간 멋을 부렸고 그 안에 17인치 휠이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후면도 매력적으로 다듬었는데, 사자의 발을 그대로 옮겨온 테일램프가 낮에도 밤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니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사자 엠블럼 일부에 옅은 녹색을 칠해 전기차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푸조 특유의 아이콕핏을 중심으로 하는 실내는 디지털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HUD가 필요 없도록 만들어주는 계기판은 과거의 아날로그 바늘에서 디지털도 건너뛴 뒤 3D 계기판으로 진화했다. 주행 중 제일 필요한 정보가 바로 앞에서 크게 보이는 데다가 시인성도 꽤 뛰어나다.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 휠은 코너에서 좌우로 이리저리 돌리는 맛이 있다.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는 운전석 쪽으로 기울어져서 시선을 크게 돌리지 않아도 보기가 편하다.
가죽과 직물을 혼합한 시트는 편안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아마도 차체와 실내 크기 때문에 1열에 성인 두 명이 탑승하면 2열을 쓸 수 없다고 보겠지만, 사실은 조수석을 앞으로 당기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2열에 성인 탑승이 가능하다. 조수석 글로브박스 쪽을 교묘하게 파 놓았기에 의자를 당겨도 무릎을 놓을 공간이 넉넉하게 확보된다. 뭐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1열에서 무드를 만드는 게 중요한 자동차고 앰비언트 라이트도 있어서 밤에 꽤 아름답다.

전기 시대에도 살아있는 해치백의 재미

전기차라는 것이 부품이라든지 구성만 보면 꽤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e-208도 전기모터를 비롯한 파워트레인은 독일 콘티넨탈에서 갖고 오며, 배터리는 조립은 직접 하지만 셀은 LG화학 또는 CATL에서 갖고 온다. 일단 스펙만 보면 최고출력이 136마력으로 꽤 낮은데다가 배터리 용량도 50kWh이므로 숫자만 보고 실망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동차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 실제로 탑승해봐야 안다.

최고출력만 생각하고 가속을 한다면 꽤 놀랄 것이다. 의외로 차체가 가볍게 발진하기 때문인데, 작은 차체에 상당히 높은 토크가 발휘되니 도심에서는 다른 차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일반 주행 모드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스포츠 모드로 발진하면 사용할 수 있는 토크가 더 늘어난다. 작은 차체에 높은 토크, 그리고 경쾌한 가속이 조합되니 운전 재미가 크게 살아난다. 단순한 이동이라고 생각했던 운전이 더 재미있어진다.

도심 내 한계속도까지 주행하다가 고속도로에도 올라가 봤다. 전기차를 탑승했을 때 흔히 하는 걱정이 ‘고속도로에서 급격히 줄어드는 배터리’이고 필자 역시 이 점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약 30분을 넘게 달려보니 그 걱정 자체가 기우였다는 것이 증명됐다. 계기판 왼쪽에 표시된 배터리 게이지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도 아니고 제한속도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는데도 말이다.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푸조는 연비 면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디젤 엔진을 접하던 시절에도 평범하게 달리면 공인 연비보다 실 연비가 훨씬 더 잘 나왔었는데, 그 성격이 전기차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반 주행 모드를 사용하고 있기는 해도 오른발에서 힘을 풀지 않은데다가 에어컨도 작동하고 있는 중인데 체감상 연비(?)가 너무 좋다. 이 정도라면 도심은 쉽게 정복할 수 있고 주말에 여유를 갖고 왕복 400km 정도의 거리를 달려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전기차를 원하지만, 막상 구매할 때가 되면 망설이게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너무 많은 주행 거리를 생각하면 구매 가격이 비싸지고, 때로는 별 다른 재미 없이 이동만을 위한 상자만 선택해야 하기도 한다. 만약 도심을 벗어날 일이 적다면, 그리고 전기차 시대에도 살아있는 운전의 재미를 찾고 싶다면? 푸조 e-208이 그 대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긴 말은 필요 없다. 일단 한 번 탑승해보면 알 것이다.

SPECIFICATION_PEUGEOT e-208
길이×너비×높이  4055×1745×1435mm  |  휠베이스 2540mm
엔진형식   전기모터  |  배기량  ​​-  |  최고출력  136ps
최대토크  ​​26.5kg·m  |  변속기 1단  |  구동방식  FWD
복합전비  24km/kWh  |  가격  4590만원(보조금 수령 전)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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