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PHEV 확장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와중에 꽤 마음에 드는 SUV, X3 30e를 만났다. PHEV의 장점 하나를 더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의 장점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평상시에는 전기모터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주말에 엔진을 이용해 장거리를 달릴 수 있다’를 장점으로 꼽을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PHEV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오래 전 들었던 사고 사례인데, 구매 후 약 3년간 전기모터만 사용했다가 갑자기 장거리를 주행했더니 엔진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반 소비자의 장거리 주행 비율이 생각보다 적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 기름값을 아낄 수 있다고는 해도 PHEV 모델은 살짝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보조금을 생각하면 PHEV를 건너뛰고 전기차로 직행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물론 급속 충전도 불가능해 마트에서 1시간 정도 장을 본다 해도 배터리를 가득 채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름값보다 더 좋은 장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배출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친환경적인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직접 닿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BMW X3는 종종 시승해 봤다. 처음에는 디젤 버전, 그 다음에는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가솔린 버전. 그리고 이번에는 전기모터와 엔진을 조합한 PHEV 버전, X3 30e다. 전기차인 iX3도 내년 즈음에 들어올 것 같으니, 그 이전에 전기차의 맛만 살짝 본다는 느낌으로 올라탔는데, 의외로 물건 하나 나온 것 같다. 주행 능력만이 전부가 아닌, 편안하면서도 이상적인 BMW의 SUV가 완성되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볼까 한다.
POWERFUL & SILENT
사실 외형이나 실내에 대해서 언급할 것은 거의 없다. PHEV 모델이라고 해서 딱히 다른 모습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보다 조금 커졌지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키드니 그릴과 개성을 살리기 위해 측면에서 강하게 돌출된 캐릭터 라인, 그리고 휠하우스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주름이 눈에 띈다.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아도 옹골차 보이는 인상을 갖고 있다. 프런트 펜더 왼쪽에 마련한 충전 소켓만이 이 차가 일반 모델이 아님을 알린다.
실내 역시 그렇다. 그래픽이 달라진 디지털 계기판과 기어 노브 옆에 마련된 버튼의 배열이 달라진 것만이 전부이고 그 외의 부분은 X3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맨 처음에 접한 X3는 원형 다이얼 그래픽을 채용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디지털에 어울리는 그래픽으로 바뀌어 있다. 실내 공간은 평균 키의 성인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확보되었다. 배터리로 인해 트렁크 바닥이 약간 올라와 있는데, 평평하게 다듬었기에 적재용량의 희생은 꽤 적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자. 이전에 탑승했던 모델이 3.0ℓ 디젤 엔진을 탑재했던 모델인데, PHEV 모델은 이보다 최대토크가 낮다. 그래서 처음에는 발진 감각을 걱정했었는데, 출발하자마자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요즘 엔진이 최대토크가 낮은 회전에서 발휘된다 해도, 출발 때부터 최대토크를 끌어낼 수 있는 전기모터에 대항하기는 힘들다. 발진 감각이 BMW답게 경쾌하기에 합격이다.
전기를 최대로 끌어다 쓰는 주행 모드인 ‘맥스 e드라이브’를 사용해 본다. 가속 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아봐도 전기모터만 사용하는 점이 기특하다. 물론 가속 페달에서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더 깊게 밟으면 즉시 엔진이 깨어나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 그 정도로 오른발에 힘을 줄 일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회생 제동이 제법 넓은 제동 범위에 대응하고 있어, 침착하게 운전한다면 바퀴에 결속된 디스크 로터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회생 제동에서 이질감이 거의 없어진 것도 놀랍지만, PHEV 모델을 운전하고 있다는 유별난 감각도 거의 없다. 전기를 다 쓴 후 본격적으로 엔진이 깨어난다 해도 그렇다. 너무 가속 페달을 얕게 밟은 것 같아서 조금 더 깊게 밟아봐도, 웬만한 회전에서는 엔진음이 정숙함을 방해하지 않는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돌리고 4000 회전 이상은 끌어다 써야 본격적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극단적인 스포츠 모델이 아니니 그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잘 안 든다.
주행하던 도중 한 가지를 더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전기차에 가졌던 큰 불만 중 하나였던 ‘소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전기차는 자체적으로 내는 소음이 없으니 주행 중 ‘조용하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데, 실제로 운행해 보면 안 조용하다. 자동차 주변에서 나는 소음들이 그대로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데다가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엔진음이 소음을 상쇄시키고 있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런데 X3 30e는 조용하다. 엔진을 이용해 주행할 때도, 전기모터만 이용하고 있을 때도 그렇다. 전기차가 갖고 있던 단점이 PHEV에서 바로 사라져 버린 셈이다. 아마도 전기차를 이렇게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팔 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비상 상황을 대비한다는 개념 때문은 아니더라도, PHEV를 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엔진 마니아’들에게는 잔인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조용한 자동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정말 많다.
연비도 그런대로 좋게 나오다 보니, 굳이 디젤 모델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정도의 출력과 토크라면 국내에서는 30d 모델과 비슷한 셈인데, 가격은 오히려 저렴하다. 물론 20d 모델보다는 비싸지만, 출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 게다가 디젤과는 달리 극단적으로 조용해지는 실내, 그리고 크게 줄어든 진동(어쨌든 엔진은 있으니까)에 가족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해 보라. 조금 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X3 30e가 만족스러웠냐고? 물론이다. 아직까지는 가솔린 엔진을 끝까지 회전시키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필자이지만, 앞으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개의 장점을 전부 누리는 것이 가능한 PHEV가 해법이 아닐까 싶다. 수리비와 유지비가 배로 들어간다고?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조용하고 편한데?
SPECIFICATION_ BMW X3e
길이×너비×높이 4710×1890×1675mm
휠베이스 2865mm
엔진형식 I4 터보+전기모터, 가솔린
배기량 1998cc | 합산출력 292ps
합산토크 42.8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 복합연비 13.6km /ℓ
가격 7350만원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