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 그란카브리오

  • 기사입력 2018.05.08 14:27
  • 기자명 모터매거진

ORIGINAL SOUND TRACK

오래 만나서 지겨웠다. 그런데 헤어지는 장면을 떠올리니, 아쉬움으로 가득 찬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2007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11년이 지난 것이다. 아직도 첫 만남이 생생하다. 압구정동 로데오가 죽지 않았을 때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거리가 울리고 삼지창은 빛나고 있었다. 하얀색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였다.

당시 슈퍼카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면 카페 안의 여성분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마세라티는 예외였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명창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뀌었고 나도 이제 학생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란투리스모는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2018년형으로 진화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본지 독자들은 사골이라 놀릴 것이다. 하도 끓여 가스비가 찻값을 넘어섰을 것이다. 과거에 동경했던 이 차를 지금 타보더라도 매력이 있을까? 10년 전 부잣집 도련님들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갑자기 돈이 어마어마하게 생기더라도 이 차를 살 이유가 있을까? 그란투리스모의 대안은 있을까? 긴말 필요 없다. 만나보기로 한다. 쿠페 모델인 그란투리스모 스포츠와 컨버터블 모델 그란카브리오 스포츠가 함께 등장했다.

역시 사운드는 죽지 않았다. 다가오는 소리만으로 심장을 뛰게 한다. 마세라티하면 지겹겠지만 사운드가 유명하다. 직업상 수많은 차를 타고 일반인들이 경험하기 힘든 슈퍼카들을 많이 탄다. 여태껏 타본 차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배기 사운드는 단연 이번에 탄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다.

욕심을 부린다면 고회전 영역에서 페라리 시그니처 하이톤 사운드와 재규어 F-타입의 백프레셔가 더해지면 우주에서 가장 이상적인 소리일 것이다.

허나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귀가 즐거우니까. 음파가 풍부하고 음색이 세련되었다. 부밍음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시동을 켤 때부터 끌 때까지 만족스럽다.

이는 마세라티가 유독 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마세라티 본사에는 이색 직책이 있다. 바로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다. 이들은 듣기 좋은 배기사운드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와 함께 튜닝 전문가와 피아니스트, 작곡가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저회전 영역에서부터 고회전 영역에 이르는 각 회전 영역마다 악보를 그려가며 배기 사운드를 작곡한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금속 덩어리의 폭발음이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타고난 성대에 노력을 더해 환상적인 가창력을 갖게 된 것이다.

소리만 좋다고 해서 2억원 이상을 지불할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달려봐야 한다. 잊어선 안 된다. 비록 옛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세라티는 레이싱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수집한 브랜드가 아니겠는가?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하니 기대를 갖고 가속페달을 밟는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란투리스모가 4.8초, 그란카브리오가 5.0초다. 매혹적인 소리 때문인지 수치보다 더 빠르게 느껴진다. 차가 크고 무거운 전형적인 GT카다.

퓨어 스포츠카의 움직임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공도에서 충분히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수치만 보더라도 최고출력이 460마력, 최대토크가 53.0kg·m다.

힘의 원천은 V8 4.7ℓ 엔진(F136Y)이다. 과거 페라리 F430에 달렸던 엔진이다. 물론 직분사로 개조되어 458 이탈리아에도 장착되었다. 오래된 엔진은 맞지만 분명 좋은 엔진이다(고백컨대 기자는 자연흡기 엔진을 사랑한다). 저속에서 풍부한 토크가 나와 일상 운전할 때 편하다.

게다가 엔진회전수를 높이더라도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타코미터 바늘을 오른편에 몰아넣고 주행하니 신난다. 고속도로에서도 배기량으로 밀어붙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최고시속은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가 각각 299km, 285km다.

박진감을 더해 주는 것이 변속기다. ZF 6단 자동변속기(6HP26)는 오래된 유닛이다. 과거 BMW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기아 모하비에도 장착되었던 모델이다. 9단, 10단 자동변속기가 나오고 있는 지금 6단 자동변속기는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변속 속도가 느리지 않아 위안이 된다.

칼럼에 달린 커다란 패들시프트를 튕기면 경쾌하게 전진한다. 거기에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어서 마음껏 존재감을 세상에 과시할 수 있다. 지금 콰트로포르테나 기블리에서 사용하고 있는 ZF 8단 자동변속기가 그리 부럽지 않다.

서스펜션은 적당히 단단한 선을 잘 지키고 있다. 요철의 충격은 잘 걸러주며 극적인 움직임에 좌우 롤링을 억누르며 잘 대처한다. 먼저 그란투리스모부터 코너링 성능을 이야기하자면 살짝 언더스티어를 일으켜 컨트롤하기 쉽다. 진입속도만 잘 조절하면 군더더기 없는 코너 라인을 아스팔트 위에 그릴 수 있다.

휠베이스가 긴 것을 감안하면 우수한 코너링 성능이다. 게다가 스티어링 기어비가 촘촘해 운전자 명령에 프런트 액슬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흐뭇하다.

이어 오픈톱 모델, 심지어 2인승 로드스터가 아닌 4인승 카브리올레 모델 그란카브리오에 옮겨 탄다. 차체 강성이 약하지는 않다. 복합코너에 들어가도 차체가 힘없이 뒤틀리는 느낌은 없다.

레이싱 트랙에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주행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공도에서는 충분히 짱짱한 느낌의 섀시다. 하지만 그란투리스모로 다시 바꿔 타면 쿠페의 짱짱한 느낌이 확연히 다가온다. 거칠게 타고 싶다면 그란투리스모, 낭만적으로 달리고 싶다면 그란카브리오를 추천한다.

브레이크 퍼포먼스도 훌륭하다. 파워트레인을 채찍질하기 충분하고 노즈다이브나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이 억제되어 있다. 타공 디스크 브레이크 로터는 멋있기도 하지만 고속에서 연거푸 강한 제동이 들어가도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캘리퍼에 멋진 마세라티의 레터링이 올라가니 유난히 잘 서는 것 같다. 브레이크 페달 크기가 라면 한 봉지 만해 무거운 답력이 부드러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장점. 여하튼 공도에서 충분히 재밌게 탈 수 있는 성능이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시승이었다. 운전자를 긴장하게 만들지도, 그 누구보다 강하진 않지만 입가의 미소를 번지게 만드는 능력은 출중했다. 게다가 메이크업 수정으로 얼굴이 더 예뻐졌다. 본판이 워낙 출중하니 프런트 범퍼만 바꾸고 요즘 미녀들을 압살하고 있다.

특히 그란투리스모는 늘씬한 차체에 매끈한 루프 라인으로 클래식한 멋을 보여준다. 거기에 C필러에 삼지창 배지가 박혀있으니 소유욕을 더욱 불태운다.

쿠페만큼은 아니지만 그란카브리오의 실루엣도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다. 차체가 크다보니 소프트톱의 면적도 넓지만 어색하지 않고 차체와 루프의 색상 조합을 잘 하면 쿠페보다 훨씬 럭셔리해 보일 수도 있다.

2018형으로 오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블루투스 연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블리에서 떼 온 8.4인치 디스플레이를 센터페시아에 박았다. 때문에 이 차가 출시될 때는 상상도 못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한다. 오디오 시스템도 이전에는 보스를 썼지만 이제 하만카돈의 것을 사용한다.

확실히 베이스 파워가 조금 약해졌다. 허나 그란카브리오에서 뚜껑을 열고 듣더라도 소리가 밖으로 퍼지지 않고 운전자의 귀에 잘 전달된다.

그렇다. 이번에 바뀐 것으로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말한 의문점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 이 녀석들의 경쟁모델은 없다. 이 가격으로 포르쉐 911, 아우디 R8, 그리고 조금만 더 보태면 맥라렌 570S 살수도 있다.

이 녀석들이라면 엔진을 캐빈룸 뒤에 놓고 신나게 달릴 수 있다. 허나 엔진 배치부터 해서 아예 장르가 다르다. GT카에 담겨있는 스포츠카와 세단의 농도 비율을 따져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911 카레라가 7:3(스포츠카:세단), 벤틀리 컨티넨탈 GT가 3:7(스포츠카:세단)이라 생각한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는 5:5 정도다. 이런 모델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매력적인 목청을 가진 GT카도 생각나는 게 재규어 F-타입 밖에 없다.

허나 브랜드 밸류에서 차이가 난다. 애스턴마틴 뱅퀴시는 어떠냐고? 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2배 높은 몸값 때문에 실구매자들의 고민 대상은 아니다. 경쟁모델이 없던 것이 마세라티를 게으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내 답변이다. 정말 친한 친구가 사려고 한다면 말리고 포르쉐 911을 추천하겠다. 구매 후에 나에게 징징거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나도 가끔씩 빌려 탈 것을 고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만약 통장잔고가 빵빵하다면 나는 무조건 그란투리스모를 사겠다. 울림을 주는 마지막 마세라티니까.

SPECIFICATION
GRANTURISMO SPORTGRANCABRIO SPORT
길이×너비×높이4910×1915×1355mm4910×1915×1380mm
휠베이스2942mm2942mm
무게1880kg1980kg
엔진형식8기통, 가솔린8기통, 가솔린
배기량4691cc4691cc
최고출력460ps460ps
최대토크53.0kg·m53.0kg·m
변속기6단 자동6단 자동
구동방식RWDRWD
서스펜션(모두)더블 위시본(모두)더블 위시본
타이어(앞)245/35 R 20,

(뒤)285/35 R 20

(앞)245/35 R 20,

(뒤)285/35 R 20

0→시속 100km4.8초5.0초
최고속도시속 299km시속 285km
복합연비6.2km/ℓ6.1km/ℓ
CO₂배출량275.0g/km278.0g/km
가격2억1900만원2억41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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