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별 단 트랙터, 메르세데스-벤츠 MB-트랙 시리즈

  • 기사입력 2020.08.21 10:28
  • 최종수정 2021.06.28 15:21
  • 기자명 모터매거진

자동차 제조사가 트랙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현재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람보르기니도 그 시작은 트랙터였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도 트랙터로 논밭을 정복했던 시대가 있었다.

1990년 6월, 독일 하노버 무대에 트랙터 한 대가 올랐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만든 MB-트랙(Trac) 1800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배기량 6ℓ의 OM 366 LA 6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출력 180마력을 발휘했는데, 당시로써는 꽤 인상적인 출력이었다. 그 이전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보면, 1980년 9월 동일한 무대에서 MB-트랙 1500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에는 최고출력이 150마력에 달했는데, 가파르거나 경사가 있는 토양에서 쟁기질을 할 때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벤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트랙터를 만들었다고 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사실 트랙터와 자동차는 뗄 수 없는 사이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동차 제조사는 트랙터도 같이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인 르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생산하던 FT17 탱크의 부품들을 활용해 농업에 도움이 되는 트랙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를 별도의 회사로 독립시켜 트랙터만 전문으로 만들었다.

스포츠카 제조사인 람보르기니와 포르쉐도 트랙터를 생산했다. 람보르기니는 본래 트랙터 전문 제작사로 시작했다가 스포츠카 제작에 뛰어들었고, 포르쉐 역시 디젤 엔진을 탑재한 트랙터를 생산했었다. 당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의 자동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트랙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다른 제품을 만들기 힘들었던 것도 자동차 제조사들이 트랙터 제작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벤츠는 당시 트랙터를 전문적으로 제작하지는 않았었지만 다용도 자동차인 유니목(Unimog)을 생산했었는데, 많은 농부들이 농사 현장에서 사용했다. 1949년부터 그런 식으로 유니목을 사용해왔는데, 농업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전문 장비가 필요해지는 시점이 왔다. 그래서 1967년부터 유니목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 전용 트랙터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유니목과 같이 생산할 수 있도록 부품과 구성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1972년, MB-트랙 65 프로토타입이 등장하자 농부들이 주목했다. 다목적 작업에 적합하고 편안함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대형 농장에서 사용하기 편했던 트랙터는 전시하는 동안 약 350건의 주문을 받았다. 이 모델은 기존의 트랙터들과 다르게 사륜구동을 기본 적용했으며, 바퀴의 크기도 모두 동일했다. 그리고 운전석을 차체 중앙에 두었으며, 앞과 뒤에 강력한 유압 제어 장치를 달았다. 용도에 따라 전면과 본체 및 후면에 보조 장비를 추가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다른 트랙터들이 사용하던 블록 형태의 프레임 대신 강성이 높은 사다리 형태의 프레임을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었으며, 앞 차축과 탑승 공간에 서스펜션을 설치해 기존의 트랙터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제공했다. 뒤 차축은 견고하게 제작해 농업 현장에서 무거운 보조 장비를 부착하고도 안정적인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기존 유니목의 부품들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기존 서비스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벤츠의 트랙터는 판매가 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1979년부터는 지역 농부들과 협력하여 실제로 사용하는 현장에서 여러 가지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트랙터의 이상적인 중량 배분을 만들어냈는데, 앞 차축에 60%, 뒤 차축에 40%의 무게를 분산시켰다. 이렇게 하면 후면에 보조 장비를 부착했을 때 앞 뒤 50%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스티어링 휠과 함께 180도 회전하는 운전석을 개발해 용이한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벤츠 트랙터의 마지막, 블랙 에디션

벤츠는 고성능 모델 AMG에 ‘블랙 시리즈’를 두고 있다. 기존 AMG 모델보다 더 경량화를 이루고 버킷 시트를 적용한 것은 물론 출력을 좀 더 높이면서 전체적인 성능을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외형에 검은색이 좀 더 추가되어 있다. 한동안 그 명맥이 끊겨 있던 블랙 시리즈는 최근에 최고출력 720마력을 발휘하는 AMG GT 블랙 시리즈가 추가되면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기존 엔진에 광범위한 튜닝이 가해져, 새로운 엔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러한 블랙의 이름을 잇는 모델이 벤츠의 트랙터에도 있다. 성능 향상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아쉽게도 ‘블랙 시리즈’는 아니지만, 차체를 검은색의 금속 페인트로 마감한 ‘블랙 에디션’이 존재한다. 벤츠가 MB-트랙 1800을 마지막으로 제작하면서 이 색상을 적용한 것이다. 이 기념비적인 모델을 끝으로 벤츠는 1991년 12월, 모든 트랙터 사업을 접었다. 당시 블랙 에디션은 190대만 생산되었고, 오늘날에는 고가의 클래식 트랙터로 거래되고 있다.

이제 벤츠의 트랙터는 더 이상 새 모델을 찾아볼 수 없고, 농업은 유니목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츠가 실용적인 트랙터를 만들기 위해 보냈던 시간들은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 결과 독일의 농업이 발전했고, 농부들은 실용적이면서 편안한 벤츠의 트랙터에 만족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독일에 갈 일이 있을 때 삼각별을 단 트랙터를 보게 된다면, 그 실용성에 경의를 표해도 될 것이다.

글 |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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