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르노와 한진, F1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

  • 기사입력 2020.07.09 16:52
  • 기자명 모터매거진

이 사진은 르노가 ‘페르난도 알론소’의 F1 복귀 소식과 함께 제공한 것입니다. 그가 르노에서 활약하던 2005년, 몬자 그랑프리 때의 모습인데요 측면을 잘 보시면 스폰서로 ‘한진’이 붙어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당시 ‘한진해운’의 회장을 맡고 있던 조수호 회장이 독자적으로 F1 후원을 맡고 있었던 것이죠. 한진은 당시 국내 기업들 중에서 유일하게 F1 후원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조수호 회장은 한진해운 사장 겸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을 담당하고 있던 1997년부터 F1 팀을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베네통 팀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상당히 간단했습니다. 베네통의 의류 및 원단 운송을 한진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유럽인들이 열광하는 모터스포츠인 F1 후원을 통하여 고객들과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자금만 지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조수호 회장은 한 해 3~4차례 세계를 돌아다니며 F1 그랑프리 무대를 직접 찾았고, 연도별 우승팀은 물론 레이서들의 이름까지도 기억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물론 ‘미하엘 슈마허’와 ‘페르난도 알론소’ 등 유명한 레이서들과도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F1처럼 해운업도 정시성과 역동성, 팀워크가 핵심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베네통 팀은 이후 2001년에는 르노 팀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0여년 간 한 팀만을 꾸준히 후원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2007년을 마지막으로 한진의 F1 후원은 끊기게 됩니다. 레이스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조수호 회장이 2006년 11월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이 52세. 한 기업의 회장으로써는 상당히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의 지속적인 후원과 사랑을 받아온 르노 F1 팀은 조 회장의 별세를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2007년 4월, 말레이시아 그랑프리 무대에서 자동차에 한진의 로고 대신 그의 이름을 영문으로 새기고 그 아래에 생애를 나타내는 '1954~2006'을 새겼습니다. 후원하는 회사 대신 개인의 이름을 새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에 세상이 깜짝 놀랐습니다.

조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한진이 F1에서 발을 뺀 지도 어느새 10년이 더 넘어버렸습니다. 잠시나마 한국 모터스포츠의 희망이었던 F1 영암 그랑프리는 위약금을 물어가면서까지 남은 경기를 개최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포뮬러-e 서울 그랑프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개최되지도 못하고 유야무야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조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서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에게 크게 일갈을 했을 겁니다. 아니, 그가 가진 후원사의 힘으로 이렇게 되지 않도록 했을 겁니다. 조 회장의 의지를 이어받아 모터스포츠를 지속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국내에서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기사를 위해 제공된 옛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글 | 유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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