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르 무대를 정복한 사나이, 류명걸

  • 기사입력 2020.06.22 17:58
  • 최종수정 2021.06.28 14:55
  • 기자명 모터매거진

올해 1월, 무대를 중동으로 옮긴 다카르 랠리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모터사이클 부문에 참가한 한국인 류명걸 선수가 완주는 물론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그는 과연 어떤 꿈을 꾸고 또 어떤 것을 보고 왔을까?  

류명걸 선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는 않았다. 작은 공장들이 모인 곳을 지나자 몇 개의 창고가 나타났는데, 그 중 하나의 문에 수 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미리 받은 번호로 연락을 하자 류명걸 선수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로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나오며 필자와 사진 작가를 반겼다. 필자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선수라기보다는 순수한 시골 청년에 더 가까웠다.

류명걸 선수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던 모터사이클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그리고 면허 취득 후 친구로부터 빌린 모터사이클 한 대가 지금의 레이서 인생을 만들었다. “엔진 이상이 있어서 정비소를 갔는데, 수리 가격이 비쌌습니다. 정비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수리비를 깎았는데, 정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죠. 즉시 일을 받았고, 2000년에 효성(현 KR 모터스) 정비교육과정에 입문했습니다.”

얼마 후 군대를 갔다 오니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모터사이클 엔진에도 카뷰레터 대신 인젝션이 도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 그는 대학 진학을 결심했고, 자동차학과에 진학했다. 2005년, 편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그는 오스트리아의 모터사이클 KTM과 마주하게 되고, KTM 국내 수입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그대로 직원이 되었다. 본격적인 모터사이클 라이프가 시작된 것이다.

류명걸 선수는 2003년부터 모터사이클 레이스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7세가 된 2007년, 레이스에서 우승하게 된다. 그 뒤로 많은 우승을 올린 그는 적수가 거의 없어진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다. 첫 해외 레이스는 2012년에 개최된 태국 랠리. 그 다음해에 몽골 랠리에 출전해 리타이어를 경험한 이후 2014년에는 완주를 했고, 마침내 2015년 태국 랠리에서 2위를 기록하며 조금씩 더 큰 랠리 무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 

“2017년에 레이스에서 우승한 이후 결심이 섰습니다. ‘다카르 랠리에 출전하자’라고 말이죠. 그래서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2018년에 퇴사했습니다. 그 뒤에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죠. 출전 자금이 많이 드니 퇴직금을 보탠 것은 물론 전세 자금도 보태고 그동안 갖고 있던 자동차도, 모터사이클도 팔았습니다.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다 정리했죠.”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때의 그는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래도 자금은 부족했기에 스폰서를 구해야 했다. 다카르 랠리 출전 당시 모습을 보면 스폰서들 중 ‘처갓집양념치킨’이 제일 크게 눈에 띄는데, 류명걸 선수와 같이 몽골 랠리에 참가한 이재선 선수가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브랜드의 충청 지사를 운영하는 그가 30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보탰다. 그 외에도 헬멧 브랜드인 HJC에서 머리에 꼭 맞는 헬멧을 지원했고, 할리데이비슨을 수입하는 기흥에서 랠리 중 영양을 빠르게 보급하는 에너지 팩을 지원했다.

다카르 랠리에 출전하기 전에 이 무대를 미리 연습해 볼 수 있는 랠리에 출전하는 것도 중요했다. 또한 출전을 위해서는 다른 레이스에 참가해 일정 이상의 성적도 거두해야 한다. 그래서 2018년 멕시코 바하(Baja) 랠리에 출전했다. 이 때 다카르 랠리 출전을 도와주는 팀과 접촉할 수 있었고, 그들의 권유에 따라 모로코 랠리 등 다른 레이스에 출전, 경험을 축적해 나갔다. 그리고 2019년, 다카르 랠리 최종 연습을 위해 몽골 랠리에 출전했다.

가혹한 중동 사막 

올해 다카르 랠리의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대륙의 변경’일 것이다. 본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무대로 삼았던 다카르 랠리는 테러 등 여러 가지 위험으로 인해 2009년부터 남미로 무대를 옮겼다. 그리고 올해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되면서 중동 사막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막에 따라 모래의 종류가 달라지고 기후와 지형에 따라서도 모래의 특성이 변한다. 이를 극복하고 주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 외에는 방법이 없다.

다카르 랠리는 상당히 괴롭다. 다른 랠리와는 달리 600~700km에 달하는 거리를 하루 안에 주행해야 하고, 그러한 일정이 며칠 간 계속된다. 정상적으로 주행한다고 해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주행하는 셈이다. 아침에 출발했다가 밤 늦게 들어오는 일도 부지기수다. 거기에 승차감을 고려할 수 없는 오프로드를 주행하다 보니 신체에 피로가 크게 축적된다. 선수들은 거의 가수면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주행하는 셈이다.

그런 상태에서 지도를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선수들에게 배포되는 지도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로드맵’인데, WRC에서는 조수석에 탄 코드라이버가 이를 보고 “전방 100m 20도 우회전” 등을 외친다. 자동차라면 역할 분담이 가능하지만, 모터사이클은 라이더 혼자서 지도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도를 본능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많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 게임기를 구입해서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랠리 중에는 쉴 시간도 없다. 주행 중 세우고 소변을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선수는 없다고. 잠시 멈추는 그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순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골인 지점에 빨리 도착한 후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늦게 도착해도 식사는 할 수 있지만, 자동차 또는 모터사이클을 정비하는 소음으로 인해 잠을 청하기가 힘들다. 당연히 다음 날 주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터사이클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만큼 정비도 필수 사항이다. 라이딩만 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모터사이클의 자가 정비도 가능해야 한다. 일반적인 레이스와 달리 고회전 영역을 하루 종일 사용하는 만큼 어디에서 이상이 발생할지 모른다. 류명걸 선수의 모터사이클도 6일차 즈음에 이상이 나타났는데, 그동안 축적했던 정비 경험을 살려 곳곳을 체크했고 냉각수가 비정상적으로 증발하는 현상을 빠르게 발견, 수리할 수 있었다.

다카르 랠리 그 이후에는 

랠리의 마지막 일정이 끝난 후 류명걸 선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완주를 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었을까?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뜻밖이었다. “사실 그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잠이 든 후 다음날 달릴 것을 생각하고 일어났는데, 이제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 진짜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카르 랠리 일정을 마치고 나면 허탈감에 젖는 선수들도 많다고 한다. 그의 경우에는 일상생활로의 회복이 꽤 빠른 편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멀티퍼퍼스 모터사이클을 구입하는 라이더들이 많아지면서 랠리에 관심이 높아진 만큼, 내년부터는 몽골 랠리의 서포터를 꾸려서 참가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모터사이클을 경험했으니, 버기로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레이스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스폰서를 구한다면, 준비를 하고 다음번에 다카르 랠리에 또 참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모터스포츠가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모터사이클 부문은 그러한 경향이 특히 심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모터사이클에 모든 것을 바치고 다카르 랠리 무대에서 완주까지 한 류명걸 선수의 노하우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모터사이클의 매력이 더 알려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류명걸 선수가 적어도 자금 걱정 없이 마음껏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의 앞날에 또 다른 축복이 있기를!

 ­­­­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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