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ING SUV, 벤틀리 벤테이가

  • 기사입력 2020.04.29 11:00
  • 기자명 모터매거진

벤틀리 역사상 첫 SUV다. 그리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100년 동안 최고만을 만들어왔으니.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다르긴 다르다. 시선도, 향기도. 거의 모든 브랜드를 다 타봤지만 벤틀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배지도 예쁘고 차도 예쁘다. 벤틀리 역사상 최초의 SUV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이 내놓은 최초의 SUV를 몇 번 타봤다. 포르쉐 카이엔은 너무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마세라티 르반떼, 람보르기니 우루스, 그리고 이번에 함께 할 벤테이가를 들 수 있다. SUV를 처음 만들더라도 브랜드 클래스가 있기에 준수한 디자인과 운동능력을 보여줬다. 다행히 못 생겼다고 느껴진 모델들은 없었다. 벤테이는 그것을 넘어 잘 생겼다. 그리고 고급스럽다. 최신의 벤틀리는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 젊어졌다. 벤테이가뿐만 아니라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도 마찬가지다.

다시 벤테이가로 돌아오자. 과하지 않은 근육을 붙인 거대한 덩치와 날개 배지로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멀리서 봐도 벤틀리처럼 보인다. 실제로 타고 다니면서 여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타도 거리의 여자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허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여서 그런지 눈길이 느껴졌다. 이것은 벤테이가의 장점 중 하나다. 여하튼 체구가 크지만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4개의 동그라미 헤드램프 안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놨는지 낮에도 반짝반짝 빛난다. 프런트 그릴은 차체 사이즈에 맞게 큼지막하다. 시승차는 그릴이 블랙으로 처리되어 있었는데 돈을 더 지불하면 은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 프런트 범퍼의 에이프런 디자인도 날카롭게 잘 빚었다.

옆에서 봐도 근사하다. 차체 사이즈에 어울리는 21인치 휠로 위풍당당한 자세를 연출한다. 게다가 D필러가 상당히 누워 있어 스포티해 보인다. 단, 프런트 오버행이 길다. 후륜구동 기반 플랫폼을 사용한 만큼 앞바퀴를 더 전진 배치시키면 우아함이 배가될 것이다.

자리를 옮겨 뒤를 감상한다. 빵빵한 엉덩이 역시 잡다한 기교를 부리진 않았다. 해치 라인을 날카롭게 접어 패널의 밋밋함을 덜었다. 알파벳 ‘B’를 담고 있는 테일램프는 불이 들어오면 더 예쁘다. 리어 범퍼 양쪽에 달린 머플러커터는 8자를 살짝 각을 줘서 표현했다. 12기통 모델은 타원형이다. 트렁크 공간은 590ℓ이며 2열 시트를 접을 경우 1774ℓ까지 확장 가능하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웰컴 램프가 바닥에 ‘B’로고를 비춘다. 시승차는 100주년 기념 모델이라 이 로고가 들어가고 일반 모델은 날개 로고다. 참고로 100주년 기념 모델은 배지도 숫자 1919와 2019을 넣어 살짝 다르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최고급 가죽향이 코를 자극한다. 손과 눈이 닿는 모든 곳이 가죽으로 감싸져 있다. 선바이저는 물론 천정까지 가죽이다. 정말 럭셔리하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정말 최고의 디자인이다. 지금까지 잡아본 스티어링 휠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스티어링 휠 크기와 두께 모두 적당하고 에어백 부분이 작고 잡는 맛도 좋다. 메탈로 처리한 패들시프트는 손가락과의 거리나 조작감도 괜찮다. 커다란 기어노브에 ‘B’자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며 주행 중 오른손을 얹어놓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실내에서 딱 하나의 아쉬운 부분을 들자면 펜던트 타입의 가속 페달이다. 컨티넨탈 GT처럼 플로어 타입이면 운전자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갈 것이다.

시트는 쿠션감이 좋아 운전자의 피로를 덜어준다. 가죽이 부드럽지만 두꺼워 오래 타더라도 짱짱한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마사지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차에 달린 마사지 기능은 ‘구색 맞추기’용인데 역시 벤틀리라서 그런지 본격적인 마사지를 지원한다. 시원하다. 보통 차들에 달린 마사지는 강도가 높아지면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한 느낌만 주는데 벤테이가는 동글동글한 것으로 꾹꾹 눌러주고 문질러주는 느낌이다. 마사지 종류도 다양하고 강도도 설정할 수 있다.

2열 공간은 밖에서 본 덩치 크기에 비해 그리 넓어 보이진 않지만 성인 남성이 앉기에 레그룸과 헤드룸이 충분하다. 등받이 각도도 적당히 누워있고 테이블까지 준비되어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

벤테이가를 타면서 놀랐다. 이렇게 스포티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잊고 있었다. 모터스포츠에서 한가락 했던 벤틀리다. 뿌리가 모터스포츠다. 그 피를 받은 벤테이가는 덩치에 걸맞지 않은 순발력을 보여준다. 후드 아래에는 8기통 유닛이 들어가 있다. 상위 트림으로 12기통 모델이 있지만 8기통만 해도 파워는 충분하다. V8 4.0ℓ 엔진에 터빈 두 발을 달아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78.5kg·m의 힘을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로 전달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5초, 최고시속은 290km에 달한다.

수치가 거짓이 아니다. 정말 조용한데 빠르다. 그렇다고 무섭지도 않다. 운전에 몰입하면 덩치와 무게가 생각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을 추월할 만큼 잘 달린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에 놓으면 엔진 반응속도도 올라간다. 승차감은 독일산 최고급 세단 보다도 훌륭하다. 지상고가 높고 승차감을 고려해야하는 임무 때문에 피칭 혹은 롤링은 포기한 줄 알았지만 벤테이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요철의 충격은 잘 흡수하면서 극적인 스티어링 명령에 거동이 무너지지 않는다.

잘 세팅된 하체 덕분에 고속안정감도 훌륭하다. 실제 속도의 반 정도가 체감 속도일 정도.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 무게중심이 노면에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왼손은 스티어링 휠, 오른손은 기어노브 위에 얹고 느긋한 크루징이 가능하다. 또한 고속에서 풍절음과 노면소음도 완벽에 가깝게 차단해 놨다.

큰 덩치가 잘 달리니 잘 서야 한다. 프런트 브레이크 캘리퍼와 디스크 크기만 보더라도 제동 성능이 믿음직스럽다. 허나 성능과는 별개로 리어 브레이크 캘리퍼도 앞처럼 모노블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 브레이크 퍼포먼스는 훌륭하다. 파워트레인과 섀시를 장악한다. 브레이크스티어 혹은 노즈다이브 현상을 잘 억제했고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걸려도 지치지 않다. 또한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들어가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는다. 벤테이가로 마음껏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이유다.

데이트는 끝났다. 정말 보내기가 아쉽다. 반납하면서 한 번 더 벤테이가를 쳐다본다. 흔한 그레이 색상이지만 뭔가 특별한 그레이 색상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조색이 어려울 만큼 여러 색을 섞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듯이 벤틀리는 벤테이가를 만들면서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다. 차에 관심 없는 이들도 보고 만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공들인 파츠 하나하나가 모여 벤테이가로 완성됐다. 벤틀리 첫 SUV라서 정성을 쏟은 게 아니라 벤틀리 배지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벤테이가다. 아니,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고 컨티넨탈 GT가 더욱 궁금해지게 만든 벤테이가였다.

SPECIFICATION _ BENTLEY BENTAYGA 

길이×너비×높이   ​5140×2000×1745mm

휠베이스 2995mm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3996cc

최고출력  550ps

최대토크  78.5kg·m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복합연비  ​​​​​​6.9km/ℓ

가격  2억8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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