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여 영면하소서, 레이서 스털링 모스 경

  • 기사입력 2020.04.14 11:38
  • 기자명 모터매거진

4월 12일, 본래대로라면 부활절을 기념해야 할 이 날 하나의 전설이 잠들었다. 1950년부터 활약하며 전설이 되어버린 레이서,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급작스럽게 들려온 비보에 페라리는 물론 메르세데스, 마세라티 등 잠시 몸담았던 팀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명복을 비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만큼 그가 전 세계 모터스포츠에 미친 영향은 컸다.

그의 풀 네임은 스털링 크라우푸르드 모스(Sir Stirling Craufurd Moss)로, 태어날 때부터 모터스포츠에 발을 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지만 아마추어 레이스에도 재능이 있었으며, 1924년에 인디 500에 출전해 16위로 경기를 마치기도 했다. 어머니는 힐클라임 부문에서 활약했으니, 재능이 넘치는 집안이었던 셈이다.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스털링 모스는 17세에 비밀리에 MG의 자동차 모델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본 아버지가 직접 모터스포츠 현장에 데려가면서 전설이 시작됐다. 스털링 모스는 1951년 F1 스위스 그랑프리 무대에 데뷔했는데, 이후 자신의 레이스카가 다른 이에게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하여 “앞으로 스쿠데리아를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이후 다양한 레이스팀을 전진했는데, F1에서는 챔피언을 획득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가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뒤에 개인 팀에 소속되면서 페라리의 자동차를 타고 레이스에 출전한 적이 있긴 하다. 당시 그는 F1 무대에서는 로터스의 자동차를 운전했는데, 스털링 모스가 소속된 개인 팀에 페라리가 파트너십을 제안했었다. 이야기도 잘 풀려가고 있는 도중이었지만, 1962년에 굿우드 무대에서 큰 사고를 당하면서 모스는 한 해를 그대로 쉬게 되었다. 상처는 다 나았지만 스털링 모스는 그 뒤 1963년에 레이스 무대에서 은퇴를 결정했다.

스털링 모스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었고, 특히 영국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은퇴 이후 TV와 영화에 적극적으로 출연했고, 1990년대 초까지도 유명한 레이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페라리도, 메르세데스도 그를 존경했으며 때때로 이벤트를 열어 그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를 위해 자사의 색상인 ‘레드’를 버리고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색상의 페라리 250 모델을 준비하기도 했던 페라리는 “스털링 모스는 곧 모터스포츠였다”라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글 | 유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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