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엘리스 스포츠 220 / 에보라 400

  • 기사입력 2018.01.25 15:18
  • 기자명 모터매거진

PLACEBO EFFECT

플라시보는 라틴어로 ‘나는 기쁠 것이다’라는 뜻이다. 로터스 엠블럼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본능적으로 우리는 곧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새파란 엘리스 스포츠 220의 흐리멍덩하던 눈은 반짝이고, 에보라의 난폭한 재채기 한 방에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고 있었다.

글 | 안효진

사진 | 최재혁

LOTUS ELISE SPORT 220

나는 순수함을 봤고, 새파란 색이었다. 차 문은 열려 있었고, 키를 꽂으러 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몸을 한껏 움츠려야 했다. 겨우 몸을 운전석에 구겨 넣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엔진은 약간 저음으로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출발 전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모두가 걱정 어린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았다. 아침 기온은 영하 8도, 올겨울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이었다. 전날 새벽 살짝 내린 눈으로 도로는 살얼음이 덮여있었고, 엘리스는 여전히 여름용 타이어를 신고 있었다.

촬영장까지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넘나들며 제법 멀리 달려야 했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쌓인 눈들이 뒤엉켜 얼어붙어 있었다. 실내 너비가 1850mm뿐 되지 않는 엘리스는 두꺼운 파카와 조끼, 그리고 내복까지 입은 두 남녀가 타기엔 무리였다.

트렁크에 옷을 넣으러 운전석에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다시 심기일전해 스티어링 휠을 손으로 딛고 겨우 일어나 땅을 밟았다. 에보라 운전석에 앉아 구경하던 동료 기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쉐린 타이어의 비벤덤이 떠오른다나 뭐라나. 옷을 모두 구겨 넣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이번에는 엉덩이를 먼저 운전석에 들여놓고 다리를 거둬들였다. 한 번 경험해 보았다고 그 새 요령이 생겼다.

스프링처럼 탄탄하면서도 묵직한 클러치를 밟아보며 부츠를 신고 제대로 수동 운전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에 손에 땀이 차올랐다. 매서운 날씨에 왼쪽 엄지발가락은 이미 감각이 둔해졌다. 출발 전, 최대한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주변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엘리스 스포츠 220은 ‘Light is Right’, 가벼운 게 옳다는 신념 하나로 로터스를 만든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로, 로터스가 퓨어 스포츠카의 대표로 자리 잡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시승차는 엘리스 S에서 스포츠 220으로 모델명을 바꾸며 무게도 924kg에서 10kg 덜어내는 등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운전석 풍경은 여전했다. 스티어링 휠 위에는 어떤 전자장비 버튼도 찾아볼 수 없었고, 한눈에 봐도 ‘여기에서는 음악은 듣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차를 연인과 드라이브를 즐기고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운전하는 사람은 없으니 무슨 상관있으랴.

출근길 꽉 막힌 도심 구간을 지나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본격적인 직선 구간에 들어서며 서서히 단수를 올렸다. 엘리스 스포츠 220 한복판에 자리 잡은 1.8ℓ I4 엔진은 최고출력 217마력, 최대토크 25.5 kg·m을 낸다.

토요타 코롤라 엔진과 같은 것을 사용하지만, 엘리스의 차체 무게는 단 914kg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재료를 써도 어떻게 요리하는지에 따라 다른 음식처럼, 엘리스 스포츠 220의 맛은 매콤하면서도 달콤해 자꾸만 먹고 싶어지는 중독적인 맛이 났다.

끝없이 올라가는 계기반 바늘을 확인하던 옆자리 후배 녀석은 불안했는지, 한 마디 툭 던지는데 차 안 가득 올려 퍼지는 풍절음에 그만 목소리도 함께 묻혀버리고 말았다. “뭐라고?”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되물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엘리스 스포츠 220이 답했다. 여긴 움푹 팬 아스팔트야, 여긴 살짝 왼쪽이 더 높고, 여긴 울퉁불퉁하네. 노면의 모든 정보를 충실히 읽으며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직선 도로에서는 무리 없이 시속 160km를 넘겼고, 주특기인 코너에서는 타이어가 마치 바닥을 잡고 돌아나가듯 안정적이면서도 날카롭게 공략했다. 시속 60km로 돌아나갔지만, 체감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기자는 수동 운전을 해보고 싶어 국민 경차를 사서 고강도 트레이닝을 했었다. 하지만 수동차 보기가 흔치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다양한 수동 모델을 맛본 상태는 아니었다. 결국 국민 경차 수동을 기준으로 엘리스를 비교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촬영 때문에 수없이 U턴을 돌아야 했는데, 계속해서 논파워스티어링 휠을 돌리다 보니, 오후쯤에는 한쪽 어깨가 뻐근해졌다. 엘리스 주인들은 평생 따로 팔 운동이 필요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니아들은 이런 불편함을 로터스만 가진 순수한 매력이라 말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 속 느리긴 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요즘처럼 운전석에 앉으면 차가 알아서 달려주고 제어하는 이런 시대에서 오직 수동 모델만 출시하며, 퓨어 스포츠카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엘리스야말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해 보였다. 안락성이나 대중적인 쓰임새를 희생하고 트랙의 스릴을 좇는 괴짜는 낯설고도 짜릿했다.

LOTUS EVORA 400

에보라 400 운전석에 앉으니, 최첨단 장치를 잔뜩 올린 럭셔리 수퍼카가 따로 없었다. 조금 전까지 엘리스 운전석 안에 있었으니, 이런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차에 타면서 몸을 움츠릴 필요가 없었고, 뒷좌석에 옷을 던져 놓을 수 있었으며, 블루투스를 연결해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야호’ 절로 환호성이 나왔다. 누군가는 편안한 로터스가 무슨 로터스냐 묻겠지만, 로터스는 모델마다 성격이 전혀 달라서 전 라인업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그 중 맏형인 에보라는 특유의 스포티한 주행 감각과 편안함 즉, 대중성을 로터스만의 감성으로 버무린 차다. 편하다고 해도 다른 브랜드 양산차와 비교하면 여전히 로터스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실내는 도어 트림부터 대시보드와 시트까지 모두 알칸타라 가죽으로 감쌌다. 센터페시아 위쪽으로 열선 시트와 주행모드, 비상등, 가변 시스템 버튼 등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 기어 또한 버튼식으로 배치해 운전의 편의를 더했다.

크루즈 컨트롤 버튼을 올린 스티어링 휠은 엘리스의 그것만큼 다루기 힘겹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날아갈 듯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묵직하고 단단했지만 팔 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노면의 정보는 스티어링 휠까지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스포츠 모드와 배기 사운드 버튼을 차례로 누르고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쉬고 있는 왼쪽 발 대신 양쪽 가운뎃 손가락이 바빠졌다. 기어 레버를 올리고 내리는 손맛보다는 덜하지만, 편하게 손가락만으로 단수를 조정하며, 다이내믹한 성능과 황홀한 배기 사운드를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에보라는 난폭한 재채기 한 방에 토크를 폭발했다. 특히 터널 안에 울려 퍼지는 배기 사운드는 정말이지 끝내줬다.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 거칠 것 없어 보였다.

3.5ℓ V6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41.8 kg·m의 강력한 성능을 뽑아낸다. 직선과 코너 길을 넘나드는 몸놀림은 날카롭고 반응이 뛰어났다. 균형 잡힌 자세가 즐거웠고, 트랙션을 잘 다스렸을 뿐 아니라 엔진 반응도 빨랐다.

아무리 세게 몰아붙여도 여유가 넘쳤다. 오늘 안에 0→시속 100km를 단 4.2초 만에 끊어내는 에보라를 능가하는 차를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서울에 가까워지자 점점 정체 구간이 늘어났다.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엘리스 운전석 안 후배의 표정도 점점 일그러졌다. 엘리스 키를 넘길 때는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생각하면 현명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아까는 퓨어 스포츠카를 칭송하며 엘리스의 날 것 가득한 느낌을 평생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에보라만 한 차도 없었다. 로터스 특유의 감성은 그대로 지니고 운전하기 조금 더 편해진 로터스. 아마도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나는 기쁠 것이다.

 

SPECIFICATION
LOTUS ELISE SPORT 220LOTUS EVORA 400
길이×너비×높이​3824×1850×1117mm4385×1972×1240mm
휠베이스2300mm2575mm
무게914kg1425kg
엔진형식4기통 슈퍼차저, 가솔린6기통 슈퍼차저, 가솔린
배기량​​​1798cc3456cc
최고출력220ps(217hp) 406ps(400hp)
최대토크25.5kg·m41.8kg·m
변속기​​​6단 수동변속기​​​6단 자동변속기
구동방식RWDRWD
서스펜션더블 위시본더블 위시본
타이어(앞)175/55 R 16,

(뒤)225/45 R 17

(앞)235/35 R 19,

(뒤)285/30 R 20

0→시속 100km4.6초​​4.2초
최고속도234km/h300km/h
복합연비​​​13.3km/ℓ10.3km/ℓ
CO₂배출량​​173.0g/km​​225.0g/km
가격8350만원(기본)1억4900만원(기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2024 모터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