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MUSCLES' DUO, 재규어 F-타입 SVR & 트라이엄프 본네빌 T120

  • 기사입력 2019.12.20 11:09
  • 기자명 모터매거진

무식하지 않다. 그렇다고 얄밉지도 않다. 이것이 영국산 네 바퀴, 두 바퀴 머슬카다.

글 | 안진욱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SEXY BOMB

재규어 F-타입 SVR

글 | 안진욱

자의적으로 영국 머슬카를 골라야 했다. 딱 하나 떠올랐다. 사실 미리 점 찍어 놨다고 하는 게 솔직하다. 자고로 머슬카라 하면 근육질 속에 8기통 파워유닛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호출한 모델은 바로 재규어 F-타입 SVR이다. 잘 생긴 외모에 고성능 디비전 배지까지 더해 더욱 피를 끓게 만든다.

이 녀석은 하얀색 라이더 가죽 자켓을 입고 건방진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조만간 모델 풀체인지에 들어가지만 여전히 예쁘다. 사람들은 재규어 역대 최고의 디자인을 E-타입이라 하지만 난 F-타입이라 생각한다. 진짜 잘 생긴 재규어처럼 생겼다.

차체는 낮고 넙대대하다. 짧은 프런트 오버행으로 사냥을 준비하는 자세까지 완벽하다. 휠은 무광 블랙 20인치를 끼워놨는데 화이트 보디와 잘 어우러진다. 쿠페 모델이라 루프 라인까지 유려하다. L자 주간주행등을 품은 헤드램프와 가느다란 테일램프는 재규어 패밀리룩을 하고 있는데 사실 시작은 F-타입이다.

기본적으로 잘난 얼굴에 과감한 에어로파츠를 둘러 터프함 마저 풍긴다. 거대한 공기흡입구와 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리어 스포일러, 그리고 리어 범퍼에 박힌 트럼펫 네 발. 액세사리까지 완벽하다. 사람으로 치자면 샌님을 비웃는 잘 노는 도련님이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가 본다. 운전자 중심으로 짜여진 센터페시아에 최고급 가죽을 아낌없이 둘렀다. 버킷시트는 쿠션감도 괜찮고 코너에서 운전자를 잘 잡아준다. 시트포지션 역시 스포츠카 답게 낮다.

스티어링 휠은 디자인은 예쁘지만 크기가 살짝 큰 편이고 가늘다. 더 작고 두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은 중저음이 풍부하고 고음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난하게 소화하는 실력을 가졌다.

긴말 필요 없이 달려보자. 무자비하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폭발적인 배기 사운드가 캐빈룸 안에 전해진다. 이것은 박력을 넘어 폭력이다. 단언컨대 양산차 중 손에 꼽을 수 있는 배기 사운드다. 훗날 전기차 시대에 내연기관의 추억을 꺼낼 때 분명 이 사운드가 회자될 것이다.

최근 다운사이징 트렌드로 터보 엔진이 확산됨에 따라 깔끔하고 시원한 배기 사운드를 연출할 수 없기에 많은 브랜드들이 운전자를 흥분시키기 위해 백프레셔를 의도한다. 여태 들었던 백프레셔가 팝콘 튀기는 소리라면 SVR은 후라이팬 위에 5.56mm 총알을 올려 놓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을 때 나는 폭발음이다.

스로틀이 열리고 타코미터 바늘을 오른편으로 옮겨놓을 때는 할리데이비슨 사운드와 흡사하게 기관총을 쏜다. 그렇다고 엇박자 사운드는 아니다. 금속끼리 부딪히는 마찰음을 잘 표현했다. 이는 소재에 있다. SVR 배기 시스템은 인코넬로 만들어졌다.

F1 머신의 매니폴드에 사용되는 인코넬은 스테인리스와 티타늄보다 밀도는 높지만 강성이 높고 열에 강해 재료를 덜 쓸 수 있다. 파이프 두께를 얇게 할 수 있기에 가볍고 사운드가 더욱 카랑카랑하며 시원하다. 이 사운드로 진정한 브리티시 머슬카가 완성되었다.

보닛 안에는 V8 5.0ℓ 슈퍼차저 엔진이 박혀 있다. 최고출력 575마력, 최대토크 71.4kg·m의 힘을 ZF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전달한다. 네 발로 개구리 점프가 가능하기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7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최고시속은 322km다. 실제로 달려봐도 제원의 수치가 거짓이 아니란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정말 밟는 게 무서울 정도다. 터빈 대신 컴프레서를 달았기에 엔진 리스폰스가 자연흡기 엔진에 버금가 가속 페달을 친절하게 대해 줘야 한다.

워낙 배기량 자체도 크기 때문에 저회전 영역에서도 힘이 넉넉하지만 진가는 고회전 영역에서 나온다. 엔진회전수가 높아지더라도 엔진이 벅차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엔진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주지 않으니 운전자는 더욱 타코미터 바늘을 괴롭힐 수 있다. 5000rpm 언저리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차를 모조리 사냥할 수 있다.

고속안정감도 준수한 편이다. 서스펜션이 출력에 비해 그리 단단하지 않지만 노면 상태가 꽝인 우리나라 도로 여건에 딱 알맞다. 감쇠력 조절이 따로 되지는 않지만 롱 스트로크 댐퍼와 스프링레이트 궁합이 좋다. 승차감은 확보하면서 극적인 움직임에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지지하는 능력을 갖췄다.

왠지 모르게 직선주로에서만 강할 것 같지만 굽이진 길에서도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스포츠카와 비교하기도 미안하지만 진입속도의 차원이다르다. 코너링 성향은 가속 페달의 전개에 따라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 그리고 뉴트럴스티어를 오갈 수 있다. 사륜구동 시스템이 있다고 맹신하면 안 된다. 재규어, 맹수다.

재규어가 SVR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주행안정화 장치가 켜져 있더라도 어느 정도의 슬립은 허용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섀시 밸런스가 좋아 운전자가 다시 자세를 바로 잡기가 어렵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사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지만 후륜구동 같다.

앞바퀴에 걸리는 트랙션 양이 적은 것 같다. 날뛰는 녀석이 채찍 한방에 곧잘 순종적으로 변한다. 브레이크 성능도 만족스럽다. 옵션으로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지만 스틸 브레이크 시스템도 출력을 다스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을 잘 억제하고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걸리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또한 코너링 중에 브레이킹이 들어가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아 마음 놓고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가져갈 수 있다.

재규어 등에 타고 신나게 빌딩숲을 누볐다. 영국산 머슬카의 성격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나오는 아메리칸 머슬카와 비교하자면 재규어 F-타입 SVR은 더 세련된 맛이 있다. 외모뿐만 아니라 주행감에 있어서도 더 정제된 영국신사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터프함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미국산 보다 나은 주행안정감을 필두로 오히려 더 거칠게 공도에서 몰아 부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브리티시 머슬카. 재규어 F-타입 SVR이었다.

WARM ON A COLD DAY

트라이엄프 본네빌 T120

글 | 유일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영국 제품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자동차와 모터사이클도 마찬가지인데, 만약 숫자와 성능만이 최고라고 논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국 제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만만치 않고 주인의 애정 어린 관리의 손길이 없다면 금방 고장이 나 버리고 만다. 세월이 지나고 제품들의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도 영국 제품들은 그런 면을 보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모터사이클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감성’이다. 엔진의 배기량 또는 적용된 기술에 비해 딱히 빠르지도 않고, 정밀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짜릿함도 없지만 무언가 다른 감각을 주는 엔진의 고동과 배기음, 그리고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차체의 감성이다.

그래서 길들이고 지배한다는 것보다는 라이더가 그 감성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그때서야 마음 속 평화가 찾아온다.

아마도 영국 출신의 다른 스포츠카와 대결하는 자리라면, 좀 더 날렵하고 힘있게 달리는 놈을 끌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재규어 F-타입은 언뜻 보면 최신 스포츠카 같지만 그 안에는 옛 재규어의 코드를 잇는 헤리티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쪽도 헤리티지가 있는 모델을 갖고 오는 것이 인지상정.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영국의 모터사이클 제조사 트라이엄프에서도 오랜 기간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본네빌이라면 딱 맞겠다.

클래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본네빌은 분명히 최신 기술로 다듬어져 있는 모터사이클이지만, 곳곳에서 클래식의 향기를 풍긴다. 과거와 다를 바 없는 형태의 원형 헤드램프와 그 위에 자리잡은 두 개의 아날로그 계기판, 그 옆에 앙증맞게 자리잡은 원형 방향지시등, 크롬 도금된 원형 사이드미러 등 모든 것이 옛 1960년대의 모터사이클 구성 그대로다.

클래식한 형태의 티어드롭(눈물방울) 연료탱크, 그리고 끝 부분이 좁아지는 형태의 피슈터 머플러도 멋과 감성을 더한다.

곳곳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트라이엄프만의 멋이 드러난다. 차체 오른쪽을 보면 엔진 하단 돌출부를 삼각형으로 다듬었는데, 트라이엄프 특유의 엠블럼과 잘 어울린다. 원형 헤드램프의 중단과 하단을 두르는 LED 주간주행등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멋이다.

여기에 수랭식 엔진을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냉각핀 형태를 적용해 실용성과 멋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 블랙 버전이었다면 더 멋있었을 것 같지만, 일반 버전으로도 충분히 멋을 만끽할 수 있다.

일단 전체적인 감상은 이 정도로. 옆에서 출발 준비를 한다고 한바탕 난리를 부리던 F-타입이 먼저 출발했으니 따라잡으려면 어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엔진이 잠에서 깨는 순간 들려오는 것은 투박한 소리와 고동.

굳이 비유하자면, 영국산이 분명한데 왜인지 모르게 미국산 모터사이클이라는 느낌이 조금씩 흘러 들어온다. 그렇다. 이 녀석이야 말로 ‘브리티시 머슬’, 아니 ‘브리티시 아메리칸 크루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엔진의 형태도, 탑승하는 포지션도 완전히 다르지만 그 속에서 묘하게 미국식 감성이 흐른다. 그러고 보면 영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그 유명한 미국의 소금 사막인 ‘본네빌’이라는 것도 이해가 간다.

오른손을 돌려서 가속하면 뒤에서 점점 더 커지는 ‘토도동~’소리가 라이더를 자극하는데, 빨리 달릴 것을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빨라지는 감각이 무엇보다 즐겁다. 맞바람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 정도는 본네빌에게 있어 감당해야 하는 하나의 의무 코스다.

최고출력은 80마력으로 1ℓ가 넘는 배기량에 비해 별 거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재규어를 따라잡고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고속 영역에 돌입해 더 속력을 높이면 가슴에 부딪히는 바람으로 인해 주행하기가 약간 어려운데, 이 때는 자연스럽게 상체를 낮추고 속력을 높이면 된다.

그런데 이미 재규어를 따라잡은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허리를 숙이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이 녀석은 완벽하게 여유를 즐기는 녀석이니 말이다.

사실은 정밀하게 달리고 있지만 어딘가 약간 풀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은 트라이엄프, 아니 영국 브랜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굳이 두 다리 사이에 탱크를 단단하게 끼고 채찍질을 하지 않아도 코너링을 즐길 수 있다.

오히려 이 녀석은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이며 회전 방향의 핸들바를 지그시 누르는 코너링을 즐기는 게 더 어울린다. 가슴이나 시선을 코너로 살짝 돌리면 자연스럽게 풍경이 흐르면서 코너링이 만들어진다.

SPECIFICATION

재규어 F-타입 SVR

길이×너비×높이 4475×1925×1310mm

휠베이스 2620mm

엔진형식 V8 슈퍼차저, 가솔린

배기량 5000cc

최고출력 575ps

최대토크 71.4kg·m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복합연비 7.5kmℓ

가격 2억1710만원

트라이엄프 본네빌 T120

길이×너비×높이 -×785×1100mm

휠베이스 1450mm

엔진형식 I2 , 가솔린

배기량 1200cc

최고출력 80ps

최대토크 10.7kg·m

변속기 6단 수동

구동방식 RWD

복합연비 -km/ℓ

가격 18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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