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기차 스타트업의 미래

  • 기사입력 2019.11.11 11:01
  • 기자명 모터매거진

지난 5월 상하이 모터쇼의 중국 전기차 전시장을 그쪽 업계 고위 관계자와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전기차 업체 중 투자금액 1조원 이상을 쓴 상위 5개 업체 니오, 샤오팡, 웨이마 등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각 업체를 돌아보고 나서 나를 안내해 주었던 중국 친구가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자존심들이 대단하니 좋은 말만 적당히 해 주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대답은 아주 엉뚱한 것이었다. 자기 생각으로는 이 업체들이 1년 안에 다 망할 것이라는 거다. 속으로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얘기가 더욱 놀라웠다.

업체들이 망하면 비록 돈은 날리지만, 기술과 인력은 남는다. 뒤에 들어오는 사람이 그것을 이어받아 더 발전시키면 된다는 거다.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중국의 사업 철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그날 저녁까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를 만났을 때 한국인들은 칼집에 들어 있는 칼을 보고 두려워하고, 일본인들은 칼날만 봐도 두려워하고, 중국인들은 배가 갈려 내장이 튀어나와도 손으로 주워 담으며 훗날을 도모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5개월 정도가 흐른 지금 중국의 평안은행은 4개 정도의 자동차 회사가 연내에 파산할 수도 있다는 관리 지침 문서를 전국 지점에 돌렸다. 3개는 전기차 스타트업이고 1개는 기존 자동차 업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가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다가 지금은 거의 공론화되어 인터넷에 떠 있는 상태이다. 중국의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미 수개월 전부터 소문은 떠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며, 기사를 검색해 봤더니 내용은 다르나 비슷한 뉘앙스의 기사가 작년 8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검색된다.

니오를 포함한 중국 EV 스타트업은 뉴욕 증시에도 상장하여 전체적으로 약 20조원 정도의 자금을 투자받았다. 그 중 니오가 약 5조원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나머지 4~5개 회사가 약 1~2조원가량을 투자받은 모양이다. 문제는 이들 업체들의 실적이 상당히 부실하다는 것이다.

니오의 경우 ES8이라는 고급 SUV와 함께 올해 봄 ES6라는 약간의 저가형 버전을 출시하긴 했지만, 월 판매 대수가 2000대가량에서 머무르고 있는 모양새다. 테슬라에 비해 한참 저렴하게 판매가격을 책정했으나 시장에서 받아들이는 높이는 아직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뉴욕증시에 주당 10달러로 시작한 니오의 주가는 현재 1.52달러 수준이다. 전기차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역시 조만간 폐지될 예정이어서, 보조금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장에서 어떤 입지를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니오 ES8의 첫인상은 상당히 높은 완성도였다. 인테리어 트림류들의 디자인은 단정했고, 만듦새도 깔끔해 보였다.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전체적인 완성도를 평가하기에 무리가 있으나, 이 정도는 이제 돈만 있으면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차량을 시승해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8월에는 배터리 화재로 리콜이 발생해, 겉보기에 비해 실제 품질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으로 바뀔 가능성도 농후하다.

중국 경제는 미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상황이 잘 풀린다고 생각을 해도 당분간 시장의 구매력이 판매자가 생각하는 호조를 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포르쉐가 타이칸을 출시했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공략이 시작되었다. 니오를 필두로 하는 전기차 스타트업들은 이제 테슬라라는 기존의 경쟁 상대를 뛰어넘더라도 전기차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기존 내연기관 메이커들과의 경쟁을 이겨나가야만 한다.

구동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빼고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혁신제품이라 불리는 전기차가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기존의 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큰 혁신을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혁신의 주요 주제가 무엇이 될 것인가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글 박준규(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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