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향 짙게 밴 토요일 아침, #48회 CARS & COFFEE 서울

  • 기사입력 2019.10.23 13:14
  • 기자명 모터매거진

미국에서 시작해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꽃피운 자동차 문화 <cars & coffee>, 2010년대 들어서 소규모 자동차 커뮤니티 회원들이 카즈 앤 커피 모임을 만든 후 2014년 공식적인 모임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어느덧 48회째를 맞이했다. 커피 향기만큼이나 짙은 마니아들의 성지를 들여다본다.

글, 사진 | 김상혁

지난 9월 21일 오전 6시 한강의 어느 주차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늘어지게 잠을 취해도 모자랄 주말 아침에 이들이 모인 이유? 자동차를 탐미하기 위해서다. 모임명 그대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자동차를 들여다보고 자동차를 얘기하고 자동차를 만지는 시간이다.

순수하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소 접하기 힘든 모델이 모습을 비춘다. 많은 이들의 첫 차이자 드림카였던 현대 스쿠프, 보닛에 노릇노릇하게 녹이 올라왔다. 은유적 표현으론 세월의 흔적이라 말하고 직설적 표현으론 녹 에디션이라 할 수 있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빠, 삼촌, 형, 할아버지까지 아드레날린을 분출시켰던 그때 그 시절의 로망이 눈앞에 있다. 모두가 우러러보며 경외심을 보였다.

스쿠프에 경외심을 내치며 물개 손뼉을 치다 시선을 돌린다. 티뷰론, 터뷸런스 투스카니가 나란히 서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윙과 라인들, 심지어 터뷸런스는 녹색 번호판을 달고 있어 과거에 취하게 만든다. 한참 뽐내고 싶었던 시절, 한참 자랑하고 싶었던 나이에 꿈꾸고 바라봤던 녀석들이 서있으니 새삼 젊은이 그리워진다.

뒤꽁무니에 힘을 잔뜩 준 세 녀석 양쪽으로 아카디아와 '아반티'가 자리를 잡았다. 대우의 자랑이었던 아카디아는 여전히 포스를 뽐내고 아반떼는 부가티 엠블럼을 붙여 웃음을 자아낸다. 저 당돌함과 당당함, 얼마나 멋진가? 자고로 남자라면 저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담은 하늘, 그 하늘을 비추는 듯한 현대자동차 탕아 벨로스터 N도 무리를 지어 똬리를 튼다. BMW와 미니는 세대별, 트림별로 집단군을 형성한다.

치토스 같은 매력의 이탈리아 브랜드 알파로메오, 세대만 모여도 전국 정모라 할 만큼 국내에선 희소하다. 카즈 앤 커피 모임에는 두 대의 알파로메오가 나타났다. 피닌파리나의 역작 916 스파이더, 알파로메오에선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156이다.

폴딩 하면 농구선수도 누워 잘 수 있다는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왜건, 일본 버블 경제의 상징 실비아, 작은 괴물 루포 GTI, 빈 디젤도 반한 머슬카 챌린저, 따끈한 신차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까지 다양한 모델이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48회 카즈 앤 커피의 ‘FOCUS PICK’을 뽑자면 단연 로터스 에스프리다.

느지막이 구경꾼을 가로지르며 들어선 로터스 에스프리는 단숨에 모두를 주목시켰다. 브리티시 그린의 영롱함과 흰머리 히끗하신 노년의 오너 조합, 엄지가 절로 세워진다. 마치 런웨이를 하듯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자리를 찾아가는 에스프리, 덜컥하고 문이 열린다. 뭐지? 싶은 찰나 바로 이해했다. 주차를 하기 위해선 문을 열고 후방을 주시해야 했던 것. 조금 전의 멋짐은 잠시 내려놓는 걸로.

로터스 에스프리는 조제르토 주지아로의 손에 의해 디자인됐는데 거침없이 쭉쭉 그어나간 직선으로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1세대 모델이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본드카로 등장한 바 있는데 영화 속에선 잠수 기능까지 장착했다. 샤론 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에선 샤론 스톤과 함께 섹시함을 어필했고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에선 줄리아 로버츠를 스타덤에 올려버렸다.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로터스 에스프리에 4기통 터보 엔진이 올라갔고 페달 간격이 레이싱카처럼 가까이 붙어있어 여자들이 운전하기 쉽다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리곤 기어를 제대로 넣지 못해 시동이나 꺼먹은 리처드 기어를 대신해 멋지게 에스프리를 다루며 질주한다. 바로 그 4기통 터보 엔진이 올라간 4세대 SE X180 모델이 여기 한강에 있는 녀석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없으나 리처드 기어처럼 희끗한 흰머리와 중후한 멋을 풍기는 오너 조합은 토요일 아침을 영화로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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