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디스커버리

  • 기사입력 2017.07.11 12:58
  • 최종수정 2020.09.01 20:26
  • 기자명 모터매거진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ROUTINE RECOVERY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정처 없이 다니다 맞닥뜨렸을 때 피할 필요가 없는 것. 당신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를 몰고 있다면 말이다. 여전히 거친 오프로더의 향기가 짙지만 잘 닦인 도로 위에서도 자신만만하다. 모난 구석을 다듬고 체지방을 줄이는 혹독한 훈련을 잘 견뎠다.

글 | 안진욱   사진 | Chris.C

1984년 8월 발사한 미국의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 거룩한 목표를 위해 떠나는 이의 이름을 지을 때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얼마나 고심했을까? 하와이섬을 발견한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 타던 배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들의 바람을 담은 직관적인 이름의 디스커버리호는 27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2011년 3월 9일 오전 11시 57분 플로리다에 위치한 케네디우주센터에 착륙했다. 2억388만km를 비행하고 지구 궤도를 5830여 회 돌았던 디스커버리호는 엔진과 주요부품을 떼어내고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디스커버리호가 우주를 떠다녔다면 지구를 누비고 다니는 디스커버리호도 있다. 바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다. 레인지로버는 너무 과시하는 듯하지만 디스커버리는 기호가 뚜렷하고 감각 있는 오너로 만들어준다. 분명 디스커버리만의 멋이 있다. 세차를 하지 않아도 느낌이 살아있는 디스커버리.

험로 주파능력과 넉넉한 실내공간을 갖춰 1989년 10월 출시한 이후 아프리카로 향하는 유럽의 모험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우리가 모험가는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세상에 치이는 것만으로 벅차다. 이러한 우리가 디스커버리와 함께 어떤 새로움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면도한 터프가이

5세대 디스커버리가 기자 앞에 등장했다. 첫인상은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거의 흡사하지만 디스커버리가 조금 더 반듯하게 생겼다. 프런트 펜더로 흘러나가는 헤드램프와 프런트 그릴은 최근 랜드로버의 디자인을 따른다.

지하철 노선도와 같았던 디스커버리4의 주간주행등은 세대가 바뀌면서 깔끔하게 헤드램프 밑동 라인만을 따라간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프런트 범퍼의 양쪽 가장자리에 공기흡입구를 뚫었다. 보닛에 랜드로버 레터링 대신 디스커버리를 붙여 놓은 것도 바뀐 점이다.

투박스 타입을 매끈하게 만지면 이러한 옆태가 완성된다. 디스커버리4가 디오스라면 올 뉴 디스커버리는 스메그 냉장고다. 부풀어 오른 펜더 덕분에 다부진 느낌을 준다. 포인트로 C필러 쪽에 랜드로버 배지가 달려있는데 뒷자리 승객에게 랜드로버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차체 사이즈에 어울리는 22인치 휠

사이드미러는 차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지게 깎아 만들었고 크기가 커 시야확보에 유리하다. 광활한 휠하우스는 유광 블랙으로 처리된 22인치 휠이 꽉 채우고 있다. 근사한 신발로 더욱 위풍당당한 모습을 연출한다. 오프로드를 마다하지 않는 녀석이니 만큼 휠 아치는 마찰에 강한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다. 루프랙은 빠지면 섭섭하다.

차체 뒤쪽으로 이동하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번호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만으로 디스커버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해치가 이전 세대처럼 위아래로 열리는 분리형은 아니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대신 해치가 열릴 때 내장 플랩이 내려온다.

빈약해 보이지만 이래 뵈도 300kg의 무게는 거뜬히 버틸 수 있다. 해치 상단에 깔끔한 리어 스포일러를 달았는데 이는 공기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리어범퍼는 사이드 스커트와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이며 두 개의 머플러 팁은 숨어있다.

사이드 스커트와 한 몸인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조미료를 살짝만 치자면 정말 레인지로버 부럽지 않다. 눈에 띄고 손에 닿는 모든 부분이 가죽으로 덮여있다. 거기에 대칭형 센터페시아 레이아웃으로 안정감을 준다.

레인지로버가 아니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터치 디스플레이는 반응 속도가 빠르며 인터페이스가 간결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계기판까지 LCD였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4 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두께가 얇고 지름이 크지만 차의 컨셉트와 덩치를 고려하면 알맞다. 센터콘솔에 냉장고까지 마련되어 있어 촬영 내내 시원한 파워에이드를 마실 수 있었다.

시트는 부드러운 가죽을 두껍게 감싸 쿠션감이 좋다. 쿠션감이 좋고 오랜 시간 앉더라도 몸이 배기지 않는다. 팔걸이까지 있어 여유 넘치는 운전 자세를 누릴 수 있다. 히팅은 물론 쿨링까지 가능해 여름에도 엉덩이가 보송보송하다.

2열 공간은 넉넉하다. 건장한 성인남성이 타더라도 헤드룸과 레그룸이 남아돈다. 디스커버리는 7인승이다. 3열 시트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체구가 작은 성인 남성이나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불편하지 않다. 모든 시트를 전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 또한 디스커버리의 매력 포인트.

이번 촬영을 위해 본지 편집부는 서울에서 멀리 떠났다. 기나긴 이동 시간 동안 대화가 없더라도 지루하지 않다. 환상적인 오디오 시스템 덕분이다. 영국의 하이엔드 브랜드 메리디안이 달려 있는데 좋은 유닛과 큰 공간의 만남으로 수준 높은 사운드를 선사한다. 풍부한 중저음과 이를 뚫고 나오는 맑은 보컬 음색이 매력적이다. 록과 힙합, 그리고 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탑승객의 귀를 호강시켜준다.

실내공간만큼의 파워

가솔린 엔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다

파워트레인은 스펙만으로도 만족스럽다. V6 3.0ℓ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61.2kg·m의 힘을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로 전달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1초, 최고시속 209km다. 이 정도 수치는 덩치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엔진스타트 버튼을 눌러 파워유닛을 작동시킨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심지어 포토그래퍼는 디젤엔진인 줄도 몰랐을 정도. 정말이지 펩시와 코카콜라를 구분하는 것보다 어렵다. 본래 재규어랜드로버의 4기통 디젤 엔진도 얌전한데 그보다 위급인 6기통 디젤 엔진은 가솔린 성애자마저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펜던트 타입의 작은 가속페달을 지긋이 밟아본다. 두툼한 토크는 촐싹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바퀴를 돌린다. 우아하게 차체가 노면에 미끄러진다. 가속력이 폭발적일 필요 없다. 답답하지 않게 전진하면 된다. 선행차를 재빨리 추월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고속도로에서도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료게이지 바늘이 빨리 왼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아니다. 힘과 알뜰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여기에는 변속기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토크밴드가 정상에서 내려올 때 다음 기어에 물리며 다시 최대토크가 터지는 엔진회전수에 잘 맞춰 준다.

프레임보디 대신 모노코크 섀시를 사용해서인지 승차감은 부드럽다. 노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달릴 필요가 없다. 롤링이 있지만 거동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480kg을 다이어트하길 잘했다. 고속안정감도 준수하다. 독일산 SUV와 충분히 견줄 수 있다.

프런트 액슬에 더블 위시본, 리어 액슬에 멀티링크 타입 서스펜션을 장착해 하체를 다부지게 만들었다. 에어서스펜션은 고속에서 최대 13mm 지상고를 낮춘다. 공기저항계수(cd)가 0.33으로 날렵해진 보디라인 역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를 불안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

고속에서 강한 제동을 걸더라도 자세는 안정적이다. 노즈다이브,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좋은 브레이크 시스템을 디스커버리는 가지고 있다. 원래 영국차가 파워트레인을 압도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디스커버리 역시 그러하다. 브레이크 페달 답력은 부드럽지만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의 제동거리를 만들 수 있다.

디스커버리가 맞다

잘 포장된 도로 주행을 거쳐 오프로드 테스트장에 도착했다. 극한의 험로를 염두에 뒀지만 보다 현실적인(?) 곳에서 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바로 해변이다. 고운 모래와 바닷물이 섞이면 차가 꽤나 고생할 수 있는 곳이다. 기자는 이곳에서 몇 대의 SUV를 빠트려 경운기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

디스커버리는 나약한 그 녀석들과는 다를 것이라 믿고 터레인 리스폰스를 ‘머드’에 맞춘다. ‘샌드’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모래가 촉촉하면 진흙이 아니던가?

정지상태에서 출발하면 땅을 파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출발한다. 넓은 해변을 바퀴 자국을 남기면서 달리니 피로가 날아간다. 급격한 경사의 언덕도 쉽게 올라간다. 과감하게 물가 쪽으로 향해 바퀴를 물에 담그고 달리더라도 끄떡없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는 못가는 곳은 없을 듯하다. 이러한 성능은 하드웨어 기술력보다는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다양한 노면에 대응하는 69년 동안의 데이터를 버리지 않고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는 예전처럼 투박하지 않다. 외모와 성격이 투박하지 않다고 해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력은 오히려 과거보다 세련되게 다듬고 출전했다. 프레임보디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모노코크만으로 훌륭한 보디 강성을 완성할 수 있는 시대다.

과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수트를 입고도 청바지를 입어도 좋다. 분위기 좋은 카페거리에 나서도 좋고 빌딩 숲을 벗어나도 좋다. 이것이 올 뉴 디스커버리다.

SPECIFICATION

LAND ROVER DISCOVERY

길이×너비×높이 4970×2000×1850mm

휠베이스 2923mm

엔진형식 6기통, 디젤

배기량 2993cc

최고출력 258ps

최대토크 61.2kg·m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타이어 (모두)285/40 R 22

0→시속 100km 8.1초

최고속도 209km/h

복합연비 12.9km/ℓ

CO₂ 배출량 148.0g/km

가격 1억790만원(First Edition)

 

Big Mouth

촬영협조 | RIMOWA KOREA

디스커버리의 매력 중 하나는 광활한 적재공간이다. 2열 시트까지 접으면 약 2500ℓ의 공간이 생긴다. 승무원 여자친구를 둔 당신. 그녀가 귀국하는 날, 재규어 F 타입을 타고 공항에 간다면 그림은 근사하다. 허나 다음날 선배한테 불려가는 여자친구를 생각해보도록. 만약 디스커버리로 데리러 간다면? 함께 비행했던 선배들을 태우고 갈 수 있다. 단체 채팅방에서 자상하고 멋진 남자친구를 뒀다는 칭찬일색으로 여자친구의 광대는 승천되어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모터매거진 편집부는 승무원 여자친구가 없기에 다른 방법으로 적재공간을 실감했다. 남자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캐리어, 독일산 리모와 10개를 3열 폴딩만으로 모두 담을 수 있었다. 단 2열 시트 위에 작은 3개를 올려놓은 것은 비밀.

 

Discovery4 Owners’ Saying

나는 군대있을 때부터 ‘각’ 잡는 것을 좋아했다. 때문에 디스커버리4를 주저하지 않고 골랐다. 경직되어 있는 외관은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다. 새로 나온 디스커버리를 봤을 때 마음이 놓였다.한층 부드러워진 모습은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또한 프레임보디를 사용해야 진정한 랜드로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모노코크 섀시로 다이어트를 하고 차체강성에서도 손해를 안 봤다고 한들, 정통성에서는 멀어진 것은 사실이니까.반면 고급스러워진 인테리어는 정말 탐난다.디스커버리4의 투박한 실내를 보다 올 뉴 디스커버리의 실내를 보니 레인지로버를 탄 것 같았다. 다양하게 준비된 편의사양 역시 부러운 점. 강태영 38세, 선박 디자이너사실 디스커버리4를 산 이유는 덩치도 덩치지만 실용성 때문이었다. 픽업트럭 못지않게 짐을 실을 수 있고, 필요하면 3열 시트를 펴내 미니밴 부럽지 않은 7인승으로 변신한다.게다가 아무리 프리미엄 브랜드라도 SUV만큼은 랜드로버의 위치에 아직 오르지 못했다고 확신했다. 냉장고 같은 실루엣은 랜드로버 중에서도 압권이었다.디스커버리 동호회 회원들 중에는 각진 형태에 반해서 구입했다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온유한 모습으로 재창조된 신형 디스커버리에 대해 갑론을박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랜드로버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수컷 냄새가 강했던 랜드로버도 이제 디자인적 기교를 통해 중성화 전략을 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마니아만 타는 차도 아니지 않은가. 전원규 32세, 편집숍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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