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레인지로버 이보크 서머 바캉스 2019 (2)

  • 기사입력 2019.08.12 15:01
  • 기자명 모터매거진

RANGE ROVER EVOQUE ON THE BEACH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장소협조 |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

동해에서 화려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도 아니고 새벽에, 그것도 어스름이 조금씩 물러나는 시점에서는 바닷가에 도착해야 한다. 천하장사도 이기지 못한다는 눈꺼풀의 무게를 찬물 샤워로 조금은 가볍게 하고 바닷가로 차를 움직여 본다. 본격적으로 해가 뜨기까지는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것은 드넓은 모래사장. 평범한 자동차라면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겠지만 이보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주행 모드를 오토로 맞춰도 알아서 지형을 감지하지만, 구태여 모드를 조작해보는 것은 ‘오프로드에서 그 능력을 보여준다’는 레인지로버, 아니 랜드로버의 주행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니 창 밖으로는 모래가 튀어 오르고 있지만, 실내는 그지 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일출을 보기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본다. 어느 새 차체에 달라붙은 모래먼지가 옷도 더럽힐까 싶지만, 막상 내리면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 설령 진흙투성이의 험로를 달린다 해도 탑승객이 내리면서 옷에 무언가가 묻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보크는 그렇게 사소한 면에서 운전자가 우아함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동해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언제나 맑으면 좋겠지만, 비가 내리거나 구름 또는 안개로 인해 해가 중천에 오르고 난 뒤에야 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오늘은 상당히 운수가 좋은 날인가 보다.

저 수평선 너머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이 자연스럽게 반원을 그리더니 완벽한 원이 되어 수평선에서 떨어진다. 그 절경을 보고 있자니 이곳까지 무탈하게 주행할 수 있는 이보크가 더 든든해 보인다.

해가 뜨는 건 이제 다 봤으니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볼 차례다. 필자가 탑승하는 이보크는 2.0ℓ 4기통 인제니움 디젤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80마력을 발휘하는 버전이고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조합해 연비를 조금 더 높이고 있다.

시속 17km 이하로 주행할 경우 엔진의 구동이 멈춘다고 하는데, 험로를 주행하고 있어서 그런지 엔진은 계속 돌아간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가속 감각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백사장을 지나 작은 마을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는 노인들이 보인다. 아직 아침을 먹지 못해 출출하지만 급하게 운전할 것도 없고, 그저 시트에 앉아 오른발에 조금씩만 힘을 주면서 디젤 엔진이 주는 막강한 토크를 느끼기만 하면 된다.

교차로를 마주하는 순간, 브레이크에 약간 힘을 주어 속력을 줄이니 정지하기 전 잠시나마 엔진이 잠들어버린다. 그 휴식은 잠깐이지만 순간적으로 배출을 참는 것만으로도 공기에 기여하고 있으리라.

요즘의 SUV들이 오프로드보다는 도심 주행에 적합하도록 연성화되어 있다고 하지만, 랜드로버 아니 이보크에서는 그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여전히 도심보다는 오프로드가 더 어울리고, 다른 차들이 주저할 만한 곳도 아무렇지 않게 돌파해 버린다.

다른 이들이 공사중인 거친 도로에서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도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약간만 속력을 줄인 채 지나간다. 그 와중에 충격이 잘 올라오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다.

목적지로 가는 길을 따라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장르가 SUV인 만큼 스포츠카와 같이 낮게 깔려서 주행한다는 감각은 없지만, 고속 영역에서도 스티어링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바싹 들어가지는 않는다. 평범하게, 다른 차들과 박자를 맞춰서 달린다면 가속 시의 출력 부족은 느끼지 못한다.

다른 이를 추월하기 위해 오른발을 짓이기듯이 누르기에는 출력이 약간 부족한 면모를 보이지만, 이보크의 본질을 알고 있는데다가 즐거운 여행길에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대신 스티어링의 버튼을 눌러 기능들을 작동시켜 본다. 주행 속력은 고속도로의 제한속력에 맞추고 앞 차와의 거리를 적당히 벌려놓도록 설정한 다음 마지막으로 차선 유지 기능을 작동시키면, 가속하던 오른발에서 잠시 힘을 빼고 가볍게 음악을 들어도 되고 창 밖을 따라 펼쳐진 바다 또는 수 많은 산들을 바라봐도 된다.

조금씩 좌우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차선을 이탈하지는 않으니 그만큼 어깨에서도 조금은 힘을 뺄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 새 또 다른 절경이 펼쳐진다. 본래 목적지는 정동진이었지만, 이미 일출은 충분히 보았기에 대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본다. 그러다 보면 차창 밖에 펼쳐진 짙푸른 바다가 보이는데, 그 순간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찔할 만큼의 경사가 있는 해안 절벽이 펼쳐진다.

도로가 해안과 바로 맞닿는 그곳, 파도와 함께 몰려오는 바닷물이 짙푸른 빛에서 에메럴드 빛으로 변하는 곳, 이곳이 바로 헌화로이다.

그 모습에 잠시 감탄하며 차를 세우고 옛 이야기에 젖어본다. 신라 시대의 강릉 태수로 부임했던 순정공이 아내와 함께 이곳을 거닐던 중 낭떠러지에 있는 철쭉꽃을 보았고, 아내인 수로부인은 그 꽃을 절실히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험준한 절벽에 아무도 도전할 생각을 못했던 그 때, 지나가던 어느 노인이 절벽에 올라 꽃을 꺾어 바치며 노래를 부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헌화가’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절벽에 꽃이 피지 않았는지 둘러보게 된다.

헌화로는 길이는 짧지만 코너가 좌우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스티어링을 조작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당연히 속력을 붙이기는 힘들지만 조금씩 좌우로 움직이는 상체와 함께 리듬을 타며 도로를 공략하기도 좋고 도로 바로 옆에서 높게 일렁이는 파도를 감상하기도 좋다.

승차감을 고려할 정도로 유연하면서도 필요할 때 단단해지는 서스펜션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차체를 잡아주고 오롯이 절경을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찰나와 같은 몇 시간이 금방 흐른다. 조금은 아쉽지만 이제는 이 곳을 벗어날 때다. 동행인의 재촉에 못 이겨 조금 더 가속 페달에 힘을 주고 엔진 회전을 높여보지만, 이내 마음이 풀어져 그것을 놓아버리고 만다.

달리려면 못 달릴 것은 아니고 그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음은 명확하나, 굳이 그 영역에 도달하고 싶지 않음을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이보크가 그 누구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은 필자에게 조용히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새 이보크에게도 밥을 주어야 할 때가 됐다. 절경에 취해 이곳 저곳을 느리게 달리기도 하고, 조금은 빠르게 달리기도 했지만, 가리키는 연비는 11km/ℓ를 조금 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장거리 여행도 부담스럽지는 않을 법 하다.

차를 먹이고 나니 사람도 배고파지는 것은 인지상정. 시간을 내 여기까지 왔으니 싱싱한 해산물들을 찾아 가까운 항구를 찾아가 본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수조에서 건져 올린 까치복을 보고 있으니 어느 새 필자의 입에서도 강한 식욕이 나온다. 사람도 자동차만큼 연비가 중요하건만, 지금은 그런 건 잠시 잊어버릴 법도 하다.

이보크와 함께 한 시간은 짧았고 그 느낌은 강하게는 남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이 끝난 지도 시간이 꽤 흐른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주행에서 보여주는 개성이 강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어느 곳이든 마음 놓고 갈 수 있다는 그 안정감이 더 편안한 여행을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여행에서도 이보크를 사용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추억이 남는 편안한 여행이란 그런 것이니까.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 서머 바캉스 20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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