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가장 안전했고, 지금은 가장 위험한 도로

  • 기사입력 2017.07.25 14:26
  • 최종수정 2020.09.01 20:38
  • 기자명 모터매거진

꿔량동(郭亮洞)

한 때는 가장 안전했고, 지금은 가장 위험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10대 도로 목록에는 중국의 절벽 동굴, 꿔량동(郭亮洞)이 매번 등장한다. 절벽 안쪽으로 난 동굴 형태의 꿔량동은 그 절벽을 품은 타이항산(太行山)과 같은 모습으로 굽이친다. 위험한 절벽계단을 거쳐야만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고민이 깊던 산골마을 꿔량춘(郭亮村) 사람들이 망치질과 끌질로 완성한 동굴 도로가 꿔량동인데, 완공 당시에는 ‘안전한 길’의 탄생에 마을사람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에야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도로로 손꼽히지만 당시 꿔량춘 사람들에게 이보다 안전한 길은 없었다. ­­글 | 박소현 사진 | Imagine China

꿔량동(郭亮洞)은 중국 허난성(河南省) 북부의 신샹현(新鄕市) 후이셴시(輝縣市)에 위치한다. 지리적으로는 중국 산시성(山西省)과 허베이성(河北省)의 경계를 이루는 타이항산(太行山)의 허리춤을 두르고 있다. 타이항산맥은 쥐라기 때 형성돼 각종 지하자원을 많이 품고 있다고 알려졌으며 최고봉인 샤오우타이산(小五臺山)의 높이는 2870m에 달한다. 마치 거인의 담벼락 같이 솟아있는 타이항산맥은 옛날부터 산시성과 허베이성의 생리를 갈라놓는 산으로 유명했다. 중국의 고시에선 인생의 좌절을 상징하는 말로 ‘타이항을 넘는 길’이란 문구가 종종 등장할 정도다. 그런데 어째서 인생의 좌절을 상징하고 해발고도가 1700m나 되는 타이항산 절벽 위에 사람들이 터를 잡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그 의문의 마을이 바로 꿔량춘(郭亮村)이다. 지금은 80여 가구의 주민들이 꿔량춘에 거주하고 있다. 꿔량춘의 시작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왕망(王莽) 시대(서기 8~23년), 꿔량춘은 동한의 군사들로부터 침략 위기에 처한다. 그 위기에서도 백기를 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군사들은 마을로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해 꿔량춘 장정들을 굶어죽일 계획을 짠다. 식량이 바닥날 때가 됐는데도 꿔량춘의 기세가 사그라들지 않아 군사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마을 문 밖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며칠 뒤 시끄럽던 북소리와 발굽소리가 잦아든 것을 확인하고 마을로 진입한 군사들은 허탈함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을 안에는 네다섯 사람만 남아 북을 치고 있었는데, 나무에 묶인 염소들이 북소리에 놀라 날뛰는 발굽소리를 전쟁을 준비하는 소리로 착각한 것이다. 꿔량춘 사람들은 절벽에 밧줄을 걸어 타고 내려가 산시성으로 대피한 지 오래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략을 짠 사람의 이름이 꿔량이며, 그를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과 절벽 이름에 각각 꿔량춘, 꿔량야(郭亮崖)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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꿔량동이 생기기 전에는 약 720개의 절벽계단을 이용해야 꿔량춘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은 안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할 것도 없이 손잡이는 사치였고 인명사고도 빈번했다. 사람이 굴러 떨어져도 수습하기가 불가능했다. 부상자를 부축하고 그 많은 계단을 오르는 것은 초인이나 가능한 일이었고, 벼랑 아래로 떨어진 사람에게 닿을 방법도 없었다.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기적에 가까운 구조를 기다린 사람도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그래도 이 절벽계단 밖에는 외부로 통하는 길이 없어 산골마을 꿔량춘 아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4~7시간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꿔춘량 입구

1972년, 절벽계단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여긴 꿔량춘 마을이장 셴밍신(申明信)은 대책을 강구하고 나선다. 마을 회의를 거쳐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터널형 도로’였다. 바위 절벽을 뚫어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길을 내자는 데 마을사람들도 마음을 모았다. 마음만 모으지 않고 염소를 팔고 약초를 팔아 망치와 끌을 사 모았다. 다음에는 팔을 걷어붙인 마을 장정 13명이 머리를 맞대고 절벽의 높이를 밧줄로 재가며 3일에 1m 정도를 건설할 계획을 짰다. 전기나 기계의 도움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위험한 계단을 대신할 터널 길에 온 마을사람들이 명운을 걸었다. 그러다 1975년 말에는 내다 팔 염소나 나물도 없어서 굴착 장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를 묶어두던 말뚝 같이 단단한 뭐라도 들고 나서서 공사에 임해야 했다. 맨 손으로 나선 사람은 공사의 진척을 위해 돌가루를 떠서 옮기는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현대판 노동요,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이 어울리는 건설 현장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1977년 5월 1일, 꿔량동은 ‘사람 잡아먹는’ 계단을 대체했다. 여전히 위험해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 덜 잡아먹는’ 길이 난 것은 당시에 큰 기쁨이었다. 5년 만에 길이 1200m, 너비 4m, 높이 5m의 동굴도로 꿔량동을 완성한 것이다. 처음 꿔량동 건설을 논의한 13명 중 한 명은 안타깝게도 공사를 하다가 낙사했다고 한다. 그래도 단기에 소수가 닦은 도로라기엔 놀라워, 중국인들은 꿔량동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기적이라고 부른다. 꿔량동에는 통풍, 채광을 고려해 절벽 쪽으로 낸 크고 작은 창문을 30개가 있다. 동굴 길의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고 벽도 고르지 않아 창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꿔량동은 산골마을 꿔량춘에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귀중한 통로가 됐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톱10에 자주 오르내리는 길로 유명하다. 위험하고 아찔한 길이라는 사실과는 모순적으로 옛날이야기가 깃들어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지금은 산골마을과 세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중국의 관광 명소로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Tourists walk along the road linking to the Guoliang Tunnel through the Wanxian Mountain in the Taihang Mountains in Huixian county, Xinxiang city, central China's Henan province, 23 October 2014."

Driving Course

번화한 도시는 아니지만, 베이쟈춘(北寨村)은 꿔량동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갖추기엔 나쁘지 않은 곳이다. 이곳 229번 지방도로 근처에는 주유소, 마트, 식당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간단한 쇼핑과 식사를 하자.

옛 꿔량춘 사람들이 절벽계단을 이용해 마을로 돌아갈 때 가졌던 결연한 마음가짐을 떠올려 보자. 앞서 말했지만 꿔량동이 있기 전에는 사람 잡아먹는 720개의 계단이 꿔량춘을 막고 있었다. 그 마음으로 중국우정저축은행(中国邮政储蓄银行)에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자. 돈이 꽤 남아있다면 더 죽고 싶지 않겠지? 조심하란 얘기다.

1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계속 가다보면 조금 좁은 따예루(达业路)가 나온다. 이제 시작이다. 비록 꿔량동만큼 위험하진 않지만 이 길도 꽤나 험하니 발끝에 힘을 좀 줘야 할 것이다. 이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꿔량동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다. 조금 더 가면 왼편에 주차장이 있다. 여기에 주차를 하고 꿔량동을 두 발로 맛볼 것인지, 아니면 계속 주행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단, 꿔량동을 지나는 동안은 주차를 할 수 없다는 걸 알아두자.

남은 일은? 꿔량동을 즐기는 것. 모쪼록 조심하길 바란다. 이 길은 찻길이기 전에 사람의 길이기에 사람이 걷는 속도에 맞춰 차가 움직인다. 무작정 사람 뒤에 따라 간다는 얘기는 아니고, 어느 모퉁이에 사람이 걷고 있을지 모르니 차가 저속주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무슨 WRC 같은 경험을 예상하고 간다면 큰 오산이다. 그만큼 속도를 낼 수도 없거니와 웬만한 WRC 경주로보다 커브길이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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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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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화가도 꿔량동을 많이 찾는다.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화각을 재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실제로 꿔량동 구석구석 그림쟁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묵화, 유화, 수채화 등 종목은 다양하다. 화폭이 생명을 입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를 안다면, 화가들의 작업 과정을 구경해보길 추천한다. 아니면 직접 작가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시간은 멈춘 듯하고, 절경은 펼쳐졌고. 그 안의 감정을 직접 담고자 한다면 직접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남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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