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TERNAL MOMENT,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 기사입력 2019.05.10 16:39
  • 기자명 모터매거진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THE ETERNAL MOMENT

오래 돼도 질리지 않는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을 찾아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를 타고 떠났다.

글 | 박지웅 사진 | 최재혁

새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간극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새것이 제일이고 오래된 것만큼 지겹고 낡아 보이는 것도 없지만, 때로는 오래된 것에서 만들어지는 익숙한 가치가 묘한 멋을 느끼게 한다는 것. 손맛 가득한 오래된 가게 안이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옛것을 쫓아 탄생한 복고풍이 되려 요새 인기인 까닭이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GranCabrio) 역시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오래됐어도 여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차다. 형 그란투리스모를 따라 내년이면 10살을 바라보는 그란카브리오는 데뷔 때 모습 거의 그대로를 유지한다. 아마 이 차의 장수 비결이 브랜드 가치를 머금은 옛 모습에서 진하게 풍기는 멋이 아닐까?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사골이라고 놀림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찬밥 신세를 당할 만큼 인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데뷔 초기 이미 시대를 초월했던 디자인은 지금 봐도 엄지를 치켜들 정도다.

더욱이 해를 달리하면서 조금씩 손본 외관은 뛰어난 완숙미까지 자랑한다. 프런트 범퍼를 다시 디자인하고, 돌출된 타원형 그릴 대신 알피에리 콘셉트에서 영감을 얻은 ‘상어 코’ 형태의 커다란 육각형 그릴로 바꾼 얼굴은 제법 날카롭다. 차체 위로 뻗은 볼륨감 넘치는 보디 라인은 가만히 있어도 질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숨 막히게 매끄럽다. 측면에서 춤췄던 유려한 곡선미는 후면부로 흘러 들어와서는 한껏 절도 있는 모습이다. 부리부리한 테일램프는 좌우 끝으로 가늘게 뻗었고, 널찍한 리어 범퍼는 안정감을 강조한 웅장한 후면부를 완성한다.

3주 동안이나 대한민국을 괴롭힌 미세먼지가 걷히고 모처럼 파란 하늘이 찾아왔다. 이젠 두꺼운 점퍼가 필요 없고, 곳곳에 봄기운이 느껴지니 자연스레 뚜껑을 열고 싶어진다. 지붕이 사라진 그란카브리오의 실내는 베이지 가죽이 햇빛 아래 영롱한 살결을 드러낸다.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을 구분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곳 모두를 가죽이 덮었다. 물건은 쓰면 쓸수록 세월의 흔적을 남겨 낡고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지만, 오랜 세월에도 매력적인 것에는 가죽만 한 것도 없다. 가죽 지갑만 봐도 그렇다. 유서 깊은 브랜드의 정밀한 시계라면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오래될수록 멋스러운 가죽이 차량의 품격은 물론 브랜드의 가치까지 잘 전달한다.

운전이라면 이골이 나지만, 마세라티는 처음 마주했던 설렘을 그대로 간직한 채 대하게 된다. 여기저기 아날로그적인 향내 풀풀 풍기는 구식 인테리어는 중요하지 않다. 시동을 켜는 순간부터 마세라티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가 설계한 명불허전 사운드 트랙을 기대할 뿐이다. 키를 돌려 엔진을 깨워본다. 타코미터 바늘이 위로 크게 솟구치더니 머리 뒤로 우렁찬 냉간 배기음이 귓전을 때린다. 눈보다 귀가 즐거워지는 때가 바로 이때다.

처음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가속 페달 위치가 다소 어색할 수 있다. 오르간 타입이지만, 어찌나 높은지 평소 시트 포지션으로는 페달에 댄 발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라 더 이질적이다. 원래보다 시트를 뒤로 빼야 비로소 발뒤꿈치를 바닥에 댄 상태에서 밟는 것이 가능하다. 알루미늄 페달의 묵직하고 단단한 느낌은 좋다. 힘주어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V8 자연흡기 엔진이 가슴을 울리는 잔잔한 선율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연주를 듣고 싶어 드라이브 모드를 고음 영역대인 ‘스포츠(SPORT)’로 바꾼다. 엔진회전수를 높여도 소리는 경박해지거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더 앙칼지고 크게 변한 소리를 더 고르고 부드럽게 다져 매혹적인 연주를 이어갈 뿐이다. 이런 훌륭한 연주를 지붕을 열어 여과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그란카브리오의 매력이다. 주책맞게 바빠진 심장박동수마저 비트를 더하니 운전이 흥미진진하다.

그란 카브리오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5초다. 퓨어 스포츠카의 영민한 움직임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페라리 F430이 품었던 V8 4.7ℓ 엔진 덕분에 생각보다 상당한 무게여도 직진 가속력이 우수한 편이다. 최고출력 460마력, 최대토크 53.0kg·m의 힘으로 몰아붙이니 금세 속력은 시속 200km에 이른다. 엔진에 물린 ZF 6단 자동변속기도 비록 오래된 유닛이지만, 변속은 빠르다. 거기다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어서 천상의 하모니를 자아내는 일등공신이다.

 달리다 보니 어느 한옥마을에 다다랐다. 옛 정취가 진하게 스며든 이곳은 세월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그란카브리오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명차의 기준은 특별하지 않다. 최첨단 기술로 눈을 호강시킬 필요도 없고, 총알처럼 빠를 필요도 없다. 그란카브리오처럼 그저 오래될수록 매력적인 멋을 가지고 새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브랜드의 참된 가치를 보여주는 차야말로 진짜 명차인 것이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SPECIFICATION _ MASERATI GRANCABRIO SPORT

길이×너비×높이 4910×1915×1380mm | 엔진형식 V8, 가솔린 | 배기량 4691cc | 최고출력 460ps

최대토크 ​​53.0kg·m | 변속기 ​​​6단 자동 | 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6.1km/ℓ | 가격 ​​​​​​2억41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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